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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6-07 21:53
[사찰순례] 화암사 송광사 위봉사 - 전북 완주의 사찰
 글쓴이 : 수연성
조회 : 7,158  



◈ 전북 완주(全北 完州) ◈





산행(山行)


두목(杜牧)



遠上寒山石徑斜(원상한산석경사)

白雲生處有人家(백운생처유인가)

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산을 오르며



멀리 늦가을 산을 오르노라니 돌길이 비탈져있고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보인다

수레를 멈추고 앉아 늦은 단풍나무 숲을 즐기노라니

서리 맞은 단풍나무 잎이 이월에 피는 꽃보다 붉어라




작년 11월 중순 전북 완주 지역의 산사를 다녀 왔습니다
번잡한 인파도 피하고 비록 만산홍엽 (滿山紅葉)은
아니었지만 새벽안개에 잠긴 바위 사이로 붉고 노란 단풍과
수북이 쌓인 낙엽이 늦가을의 정취를 누리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겨울이 오기전 낙엽에 숨겨진 오솔길을 따라
계곡 깊이 호젓이 자리잡은 산사를 찾아 새벽부터 길을 나서 찾아간
멀리 전북 완주 지역의 산사를 소개합니다

목적지: 화암사(花巖寺) - 송광사(松廣寺) - 위봉사(威鳳寺)



◈ 완주 대둔산 (完州 大屯山)◈



금산을 지나 완주에 이르니 멀리 새벽 안개 사이로 비쳐지는
기기묘묘한 바위 봉우리들이 아름다운 한 폭의 진경 산수화를
감상하는 것 같다. 완주는 백제시대 옛지명이 완산주(完山州)라고
불리어졌는데 대둔산을 바라보니 말그대로 산세가 완비된 고을이라는
지명이 잘어울리는 듯하다




케이블카를 10여분 타고 오르니 저멀리 정상인
마천대가 보이고 그아래 기암괴석들이 그 위용을 들어내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내려 철계단을 오르면 금강 구름다리가 나타난다
구름다리는 단애를 이루고 있는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잇는
81m 높이에 50m 길이를 자랑한다.



입석대에서 마천대를 오르는 삼선계단은 사람이 발디딜 틈도 없이
일렬로 오르고 있다.오르것이냐 말것이냐 잠시 고민하다 가는 길이
멀다는 핑계로 돌아섰는데 마천대에 오르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하기야 옛날 원효대사는 대둔산을 두고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산'
이라 하지 않았는가!



◈ 화암사(花巖寺) ◈


화암사, 내 사랑



안 도현



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시인은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화암사를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
라고 쓰고 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라고도
표현되기도 한 화암사는 시인에게 너무 소중한 느낌이 들어
가슴속에만 묻어두고픈 절인 듯하다.

늦가을 화암사로 길은 정말 아름답다.
화암사에 당도하려면 참나무숲과 가을 가뭄에 말라버린
작은 개울을 따라 20분쯤 숲길을 올라야 한다.

계곡 끝에는지금까지와의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치 승속의 경계라도 되는 듯 철조망처럼 산을 가로막은
1백 47계단 철제 계단이 나타나고 그계단을 올라야
계곡과 절벽, 숲으로 둘러싸여 잘 숨겨진 절집 화암사 우화루에 이르게 된다.

◈ 우화루(雨花樓 보물 662호) ◈




우화루는 앞면의 기둥만을 2층으로 하고 뒷면은 축대를 쌓아 세운
공중 누각형 건물로서 앞에서 보면 2층이고 뒤에서 보면 1층이며
기둥위 장식이 복잡한 다포계 양식으로된 맞배집인데
특이한 것은 중앙칸의 대들보와 중보 사이에 화반을 두어 받친 것이다.



단청의 화려한 오방색은 세월에 씻겨져 나무 무늬 그대로의
수수한 모습으로 서 있는 우화루뿐만 아니고 절집의 모든 건물이
오랜 세월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우화루를 지나 타원형으로 만든
작은 문으로 들어서면 ㅁ자형 마당에 적묵당과 극락전이 둘러서있다.

◈ 극락전(極樂殿 보물 663호) ◈




우화루와 마주보고 있는 정면의 극락전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이나
1605년(선조 38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극락전 역시 맞배집으로
현재 중국이나 일본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단 하나의 하앙구조 건물이다.

극락전 하앙(下昻ㅡ, 서까래가 처지는 것을 막는 지붕구조)은
전면부에서 용머리 형태를 후면에서 용꼬리 형태를 취하고 있어
법당 전면의 용머리는 船首, 용꼬리는 船尾가 된다.
이는 부처님을 모시고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상징한다고 한다




건물 흙벽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 밑은 자연스레
사람이 다니는 길이 되고, 곡식을 널어 말릴 수 있는
햇볕 잘드는 곳은 마당이 되며 풍상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결이 들어 난 기둥과 문틀, 연륜이 풍겨지는 힘찬 글씨의 편액,
단청이라고는 구경해본 적도 없는 듯한 꾸미지 않은 우화루의 목어,
오래된 것들의 묵은 맛이 이렇지 싶다.

세월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절.
그곳이 바로 전북 완주의 화암사다.



화암사 가는 길은 500여년전 화암사 중창비에 씌어진
‘바위벼랑의 허리에 너비 한 자 정도의 가느다란 길이 있어
그 벼랑을 타고 들어가면 절에 이른다’
는
글 그대로다. 화암사 가는 길은 너무 아름다워 자랑하고 싶지만 알려지면
정다운 고향집이 변해버릴까봐 꼭꼭 가슴속에 묻어 두고 싶어하는
시인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화암사는 어릴적 찾아가던
고향집같은 조용한 절집이다


◈ 송광사(松廣寺) ◈



화암사를 나와 소양면에 이르러 벗꽃길이 아름다워 '아름다운 길100선'에
선정된 벚꽃나무터널을 만나게 된다. 개천 작은 다리를 건너자 마을이 나오고
마을 한가운데 사찰이 위치하고 있다.절 담벼락 옆에 바로 민가들이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이곳은 사찰에서 사용되던 종이를 제작하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이 종남산 아래에 자리한 송광사(松廣寺)는 신라 경문왕(景文王) 때 도의선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며 당시 이름은 백련사(白蓮寺)였는데, 규모가 매우 커서
일주문이 3㎞나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 금강문과 천왕문 ◈



송광사는 평지형 사찰로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는 일자(一字)로 배치되어 있어
일주문에서 바라보면 정면으로 금강문(金剛門)·천왕문(天王門)과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 온다 .




금강문을 거쳐 천왕문에 들어선다. 보물로 지정된 이곳 천왕문
소조사천왕상(보물 1255호)은 색다르다.

흙으로 빚은 소조인 사천왕상의 양식적 특징은 사실적 표현에 있다.
특히 얼굴부분, 즉 눈, 코, 이빨, 눈과 이마의 주름살까지 아주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체 균형도 잘 유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 각부의
표현도 뛰어나 입체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종루(鐘樓)가 있고 종루 옆의 대웅전을 지나면
뒤쪽에 나한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있다.

◈ 대웅전(大雄殿 보물 1243호) ◈



대웅전은 1622년 처음 지어졌을때는 2층이었으나 1814년 또는 1857년에
건물이 기울어져 1층으로 고쳐지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후기 건축의
전형적인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 대웅전 소조삼불상 및 복장유물(보물 1274호) ◈



대웅전 안에 있는 소조삼불좌상(塑造三佛坐像)이 모셔져 있는데
흙으로 만든 불상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가운데 석가여래상, 왼쪽에 약사여래상, 오른쪽에 아미타여래상이 모셔져 있으며
아미타여래상은 국가에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땀을 흘린다고한다

현판은 조선시대 서예가이며
인조의 아들인 의창군 이광의 필체이다.



대웅전 천정은 불국토를 날아다니는 11폭의 비천도들이
대웅전 천장을 장엄하고 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모습이다. 대웅전뿐 아니라 비천들은 온 사찰을
천천히 떠다니는 듯하다. 대웅전의 벽과 천장에는전라북도가
소리와 춤사위의 본고장임을 증명하는 듯 주악비천도 11점이 조성되어 있다.

◈ 종루(鍾樓 보물 1244호)◈



십자각은 2층 누각식 건물로 대웅전과 함께 조선시대 후기 1857년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체로 종각 건물은 사각형을 하고 있는데 반해
이건물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보궁(寶宮)에 주로 사용되는 십자형,
즉 ‘아(亞)’자형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 극락전과 전각들 ◈




극락전 옆에는 기와로 쌓아 올려 보는 이로 하려금 절로
웃음이 나오게 하는 굴뚝과 환한 미소를 머금은 나무 장승등
둘러 보는 것 만으로도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 질 것같은
천진불과 장승들이 절 곳곳에 놓여져 있다




송광사는 널찍하게 펼쳐진 수만평 대지위에 터를 잡은
평지형 사찰로 옛백제지역의 사찰들이 보여주는 평지성을 새삼 확인 시켜준다
평지형 사찰은 넓은 터에 띠엄 띠엄 전각이 들어서 있어 산만하기 쉬운데
송광사는 정원과 장승같은 조형물이 빈 공간을 잘 채운 편안한 절집이다


◈ 위봉사(威鳳寺) ◈




위봉사의 위봉이라는 이름은 신라 말 최용각(崔龍角)이 말을 타고
전국 산천을 유람할 때 봉산(鳳山)에 올라가 장대봉에서 보니
남쪽으로 봉황 3마리가 산을 감싸고 있어 이를 보고 이곳에 절을 짓고
절 이름도 '봉황이 에워싸다'는 뜻의 위(圍)봉사였으나 언제부터인
위엄이나 세력을 뜻하는 위(威)로 바뀌어 위봉사(威鳳寺)로 불리웠다.

이후 나옹화상이 이곳을 지나다 지형의 아름다움에 탄복하였으며
석잠스님이 구조를 고쳤다가 승숭스님이 거찰로 만들었다.
현존하는 『위봉사 극락전중수기』에 의하면 나옹화상의 중창 때
28개의 전각과 10여개의 암자가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 봉서루 ◈



송광사는 평지가람형 배치이나 위봉사는 전형적인 산중 가람이다 보니
산의 기슭의 높낮이에 따라 축대를 쌓아 단을 높여 가며 터를 다듬어
넓은 공간을 확보한 후 각 단에 어우러지게 일주문, 천왕문 등의 관문을 세우고
봉황이 등장하는 절의 이름을 따른 것인지 봉황이 산다는 봉서루를 올려 두었다.



가파른 계단 위에선 일주문 사천왕문을 지나 위봉사의 마당에 당도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세월 모를 한그루의 소나무이다




재송백(栽松柏)



혜심(慧諶)



栽松栽柏示?林(재송재백시최림)

非但炎天愛翠陰(비단염천애취음)

直待千秋黃落盡(직대천추황락진)

看渠獨有歲寒心(간거독유세한심)



소나무 잣나무를 기르며



소나무 잣나무 길러 작은 숲 보여줌은

다만 찌는 날씨에 그늘이 좋아서가 아니다.

바로 오랜 세월 단풍이 다진 뒤를 기다려

그것이 추위에 굴하지 않는 마음을 보련다.



요즘 절에는 배롱나무를 많이 심는 듯하다
작은 붉은 꽃과 가지의 휨이 아름다워 조경용으로 심는 것 같으나
껍질이 없는 배롱나무는 여자의 나신(裸身)을 연상시킨다하여
옛날 선비들은 집에 심지를 않았다고 한다
혜심(慧諶)의 깊은 뜻을 기려 법당앞에는 소나무를 심는 게 좋지않을까 싶다

◈ 보광명전(普光明殿 보물 제 608호) ◈



소나무 뒤로는 보명광전이 왼편에는 관음전과 요사체가 있다
보명광전은 고려 말 나옹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현재의 건물은 17세기 후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한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불단 위쪽으로 운룡과 여의주 모양의 구슬을 장식한 닫집을 만들어 놓아
불상에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안쪽 뒷벽에 그린 백의관음보살상을 비롯한 여러 불화와 비교적 채색이
잘 보존된 금단청은 차분하고 아늑한 법당 안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 관음전 ◈



보광명전의 좌측으로는 특이한 형태의 관음전과 요사가 있는데
요사라고 하지만 앞면 중앙은 대청마루를 둔 법당으로
<관음전>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다. 그 좌우에 실제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채를 두어 건물 평면이 <工>자형을 이룬다.
조선 고종 5년(1868)에 절 확장을 위한 큰 공사가 있었는데,
건물의 짜임새로 보아 이 요사도 그때 지은 듯하다.

조선시대 주택의 구조를 취하면서도 일부를 법당형식으로 장식하였다.
관음전과 승방, 부엌 등은 지붕의 높낮이가 서로 달라 그 기능에 따라
품격의 차이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 전각들 ◈



나한전은 진묵대사가 조성한 500나한을 모셨던 큰 법당으로
위봉사가 나한도량으로 불리는 이유가 되었다.
진묵대사의 500나한은 없으나 현재 보광명전의 16나한을 옮겨와 봉안했다

위봉사의 전각들은 지방 문화재 제698호인 요사와 삼성각이 있으며
현재는 조계종 비구니의 수련장으로 최근에 중창이 이루어지고 있어
대다수의 건물들은 모두 지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것들이다.

2008년 11월 16일

"끝"





Ernesto Cortazar ◈ Autumn Rose






보현심 09-06-09 08:02
 
송광산 애들 어렸을때 함께 한적이 있네요...경내는 다 둘러보지 못했구
사찰앞 빙판에 미끄럼 타며 깔깔대던 기억이 ㅎㅎㅎㅎ
그때는 그저 여행하면서 둘러보던 코스로만 생각했지요...
자주뵈요 보살니임~~~~~
천지연 09-06-11 15:38
 
삼년전 가을에 대둔산 구름다리 에서 가을에 절경을  보구 넘 아름다워
감탄사를 보내든 때가 엊거제 같은데,,,수연성 보살님의 멋진 사진으로
두루 두루 구경 자알 하네요,,,자세한 설명 감사하구 산야의 아름다운풍경에
마음이 밝아지는것 같아요,,,,감~~싸~~~~구경 자알 하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