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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3-18 20:27
출가재일 덕현스님 법문
 글쓴이 : 원오사
조회 : 4,988  
심출가 재출가(心出家 再出家)
                     
 2010년 3월 23일 출가재일 소참법문

 
  음력 2월 8일 오늘은 출가재일이다.
  만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가하여 대도를 성취하지 않으셨다면 아마 고타마 싯달타는 어릴 적 아시타 선인의 예언대로 전륜성왕이 되어 천하 백성들을 다 아우르고 복되게 하고 한 세상의 부귀영화를 만인에게 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고 모든 사람이 환영한 것이었을지라도 결국은 아침햇살에 사라지는 이슬과 다를 바 없이 얼마 안 가 전설 속의 태평성세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륜성왕의 보위를 버리시고 새벽녘에 궁성의 담을 넘어서 출가를 결행하셨으니, 이 세상 모든 덧없는 것을 등지고 집착의 집을 뛰쳐나와, 무량겁을 두고도 무너지지 않는 절대 해탈과 대적정삼매를 증득하여 중생에게도 이 삼계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 보이신 것이다.
  고타마께서 갓 출가하여 구도의 행각길에 마가다국을 지날 때였다. 당시 인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이던 마가다국의 왕 빔비사라가 하루는 궁성에서 저자거리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어떤 사람을 발견하고 눈을 번쩍 떴다.  사문이었다. 위의가 엄정하고 모습이 거룩하며 가히 그 몸에 대도를 담을 만한 위대한 수행자였다. 급히 성밖에 나가 그 사문에게 예를 올리고 나서 왕은 이렇게 제안했다.

  “사문이여, 내가 그대에게 이 왕국의 반을 줄 테니 출가수행의 길을 접고 이 나라를 나와 같이 다스려주지 않겠는가?”

  그러자 그 사문 고타마 싯달타는, 자신은 이미 카필라국위 태자로서 왕이 될 분을 포기하고 이 세상에 무상하지 않은 진리를 구해서 길 떠난 출가자임을 분명히 했다. 빔비사라 왕은 나라의 반으로는 혹 부족해서 그러지 않는가 싶어, 그럼 나라 전체를 다 줄 테니 자신을 대신해서 나라를 다스려주지 않겠냐고 또 물었다.

  싯달타는 역시 이번에도 정중하지만 단호히 사양했다. 
  빔비사라 왕은 아쉬운 나머지,
  “그대가 진실로 구도자다운 발심을 갖춘 듯하니 그대는 꼭 대도를 성취할 것이오. 언젠가 도를 이루게 되거든 부디 나를 잊지 말고 꼭 먼저 제도해주시오.” 하고 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나중에 부처님은 대도를 성취한 후, 빔비사라 왕을 재가의 제자로 맞아들여 도를 가르치고 수다원과를 증득하게 하셨다.
  우리가 출가하는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고 또 사람들에게 얼마 되지 않은 존경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서산대사께서 말씀하셨듯이, 오직 몸소 삼계를 뛰어나서 삼계의 고통에 휘말려 윤회하는 육도의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예전에 만난 어떤 스님에게서 들은 이야긴데, 그 스님은 출가 전에 원양어선을 타고 먼 나라들을 두루 돌아다녔었다고 했다.  하루는 어떤 아프리카의 항구도시에 정박을 하고 땅에 내려 거닐다 나무 밑에서 앉아있는 행색이 거의 거지처럼 아주 초라한 어떤 노인을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고 발길을 멈추게 할 만큼 특이했던 것은, 매우 편안하고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그 사람의 표정이었다. 주위를 맴돌다가 결국은 다가가서 말을 붙였다.


  “당신은 왜 그렇게 행복해 보이십니까?”
  “당신은 먹을 음식이 없는가?”
  “아니요, 저는 평생 음식이 없어서 굶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대는 한 평생 먹을 음식이 있지만 불행하고, 나는 지금 오늘 점심에 먹을 것도 없지만 괜찮다. 그대는 옷이 몇 벌이나 있는가?”
  “평생 입고 남을 옷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불행하고 이 넝마 같은 옷 하나밖에 없는 나는 행복하다. 살 집은 있는가?”
  “네.”
  “그대는 집이 있지만 불행하고 나는 집이 없지만 행복하다. 그대가 행복해지게 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대화 끝에 망치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떨칠 수 없었다. 그 뒤로 내내 바다에서 돌아다니는 동안, 도대체 인생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스님은 결국 출가하고 말았다.

  아마 지금 이 자리에 앉아계신 스님들도 이 세상의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숙세의 혜안으로 가려보고 진실로 무상하지 않은 것을 찾아서 출가하셨을 것이다.

  출가는 중생의 눈으로 보면 이미 자기에게 주어진 것, 자기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을 공연히 포기하는 바보짓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영원한 것을 위해 이 하루아침 이슬과 같은 보잘것없고 부질없는 것을 포기하는 현명한 용단이다. 그래서 출가를 위대한 포기라고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보기에는 당연히 하지 않을 수 없는 결단이요, 물이 흐르듯이 가는 참 인생의 길일 수도 있다.

  법구경에는, 

 

  ‘현상계의 선과 악을 초월하여
  범행을 갖추고
  지혜로 세상을 지나는 나그네,

  그를 일러 진정한 비구라 한다.’는 말씀이 있다.

 

  이 세상에는 참 가치 있는 것도 많고 옳고 그름 따져봐야 할 것들도 많은 것 같지만, 누구에게나 한 평생은 잠깐 사이에 속절없이 지나고, 나중에 알고 보면 그 옳고 그름을 다투고 귀하고 천한 것을 가렸던 것이 너무나 덧없고 보잘것없었음을 통감하면서 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진실로 진리가 주는 영원한 행복을 찾는 자라면, 비록 출가수행의 길을 가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마음 안에서 선과 악을 초월하고, 덧없는 것과 영원한 것을 가려보며, 마음속의 출가라도 해야 한다.  심출가(心出家)라고 한다. 

  사실은 심출가가 진정한 출가이다. 심출가를 하지 않으면 비록 머리 깎고 스님이 되었어도, 마음속에 탐욕이 들끓고 아만에 빠져, 구도의 길을 순탄하게 갈 수 없고 그 길에서 그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다. 출가의 보람이나 부처님이 약속하신 해탈과 열반은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반대로, 비록 속세에 살지라도 심출가가 이루어져서 세상의 헛된 것들에 크게 뜻을 두지 않고 욕정이 담박하며, 진실로 지고의 가치를 가진 대해탈과 열반을 꿈꾸고 찾는 사람이라면, 과연 발심한 장부라고 할 수 있고 출가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진정한 출가를 결행한 사람은 세속적인 것에 애착이 없어서 구하는 것도 없고 근심도 없으며 안팎으로 걸림도 없다. 그 가운데 하루하루가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구도의 여정이고, 또 중생들에게 자기가 가는 그 자취로써 길을 열어 보여 다함께 저 부처님의 대열반을 향해 가도록 이끌어갈 뿐이다.

  옛날에는 지혜롭고 선근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 사회의 상당한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 또 많은 것을 갖고 누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출가를 더 많이 했다. 달마대사는 남인도 향지국의 왕자였고,  대각국사 의천은 고려의 왕자였으며, 보조국사의 법을 이은 담당국사는 금나라의 왕자였다. 중국에서 지장보살의 화현으로 추앙받고 있는 교각스님도 신라의 왕자였다.  부처님 시대는 말할 것도 없어서, 부처님만 세상의 부귀영화, 전륜성왕의 보위를 버리고 출가하신 것이 아니라, 그 왕가의 뛰어난 자제들과 그 시대의 많은 엘리트들이 출가해서 불법을 구현해보이고 중생들의 사표가 되었었다. 그런 시대가 정법이 살아있는 시대요, 삼보의 빛이 어둠을 밝히는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말세가 되고 중생들의 근기가 하열해지면 세상에서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 세상의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이 겨우 출가를 하게 된다. 심출가는 적고 신출가(身出家)는 많아지며, 위대한 포기를 단행한 사람은 적고, 중이 되어 부귀, 출세, 영달을 바라는 풍조가 만연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출가자들의 수준은 논외로 치더라도, 젊은 출가자들의 수가 아예 줄어들고 있다. 송광사나 해인사 같은 큰 절에 가 봐도 행자들이 현저히 적어졌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마저도, 옛 발심출가자들이 가졌던 마음속의 결연한 의지나 확고한 구도심, 오히려 구참 수행자들을 숙연하게 만들던 초발심자들의 기상과 순수한 도심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이것은 우리 불교의 앞날을 생각할 때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출가인들은 자기 인생의 길을 멀리 가늠하고 이 세상에 어떤 것이 정말 가치있는 일인지를 깨달아서 제 발로 출가하지만, 더러는 강제 출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부처님 당시에 왕자 난다는 부처님이 억지로 끌고가다시피 해서 출가를 시켜 아라한을 만들었고, 부처님의 아들이었던 라훌라 존자도 부처님이, “이 아이를 출가시켜라.” 하고 상수제자 사리불에게 맡겨서 득도시켰다. 몇 년 전 백양사에서 법을 펴시다 입적하신 대선사 서옹스님은 어릴 때 수학 여행을 왔다가 도량 안에서 북적대는 수백 명 어린 아이들 틈에서 당대의 도인 만암 스님의 눈에 띄어, “너 집에 가지 말고 출가해라.”는 말을 들고 그 자리에서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절에 남아 스님이 되었다고 들었다.

  정말 이 길의 끝에 서 본 사람 같으면, 자기가 이미 목적지에 이른 사람 같으면, 괜찮은 그릇을 보면 주저 없이, “너 출가해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부끄럽게도 아직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누구 보고도 출가를 권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시대에 누구를 탓하겠는가?  먼저 우리 스스로가 심출가를 하도록 하고, 진실하게 구도행을 해서 점차 그 결실을 나타내 보임으로써 뒷사람들에게 이 길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기약할 뿐.  여러분들이 마음 안에서 진실로 이 덧없는 인생의 시간을 출가의 길에 바쳐서, 세상의 부귀영화, 그 덧없는 미망의 꿈에 젖어있지 말고, 하루하루를 소중한 구도의 삶으로 이끌어 가시기를 바란다.

  출가의 길은 수행으로 채워지기만 하면 언제나 기쁘고 또 자유롭고 행복하다.

  법구경에는 이런 게송도 있다.


  악도에 떨어진 중생들은 인간들을 부러워하고
  인간들은 천상의 신들을 부러워하며
  천상의 신들은 숲속의 수행자를 부러워한다.

 
  중국 청나라 때 세 번째 황제였던 순치제가 출가하며 남긴 시는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

  어느 도인에게 손상좌들이 물었다.
  “노스님, 스님들은 죽는 것이 옷 벗는 것과 같다 하시는데, 노스님은 언제 옷 벗으실 겁니까?”
  “뒷산 바위가 무너질 때 벗을 것이다.”

  그 후 어느 날, 그 도인은 제자들에게 붓을 가져오게 해서 자화상을 그렸다. 그런데 그 영정엔 눈동자가 없었다. 의아해 하는 제자들에게,

  “사십 년 후에 이 걸개그림을 가지고 다니면서 “누가 나서서 자기 영정을 찾아가시오!”하고 외치면, 내가 나타나 초상화에 눈동자를 그려 넣을 것이다.” 하고  말을 마친 그 도인은 단정히 앉아 입적했는데, 그 때 뒷산 바위가 돌연 무너져 내렸다.

  사십 년이 지나, 청나라의 세 번째 황제 순치제가 그동안 마상에서 떠날 날 없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여 겨우 중원을 통일한 후, 하루는 자금성에 앉아 있었다. 그때 성 밖에서 문득,
  “누가 자기 영정 찾아가시오.”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중이 걸개그림을 들고 있는데 초상화에 눈이 없었다.  황제는 가까이 불러 붓을 들어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이에,
  “사십 년 만에 스승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하며 그 중이 큰 절을 올리니, 순치는 홀연히 자신의 전생을 깨달았다.
  그 길로 곤룡포를 벗어던지고 입산하며 출가시를 지었다.

  ...              ...

  朕乃大地山河主  나 이 산하대지 주인이 되었건만
  憂國憂民事轉煩  나라 걱정, 백성 걱정 갈수록 번거로워 

  百年三萬六千日  세상 백년 삼만 육천 날의 영화라도 

  不及出家半日閒  출가해서 지내는 한 나절 한가로움만 못하리

  ...              ...     

 

  四海五湖爲上客  사해 오호의 위없는 나그네길

  逍遙佛殿任君棲  부처님 도량마다 마음대로 머무네

  莫道出家容易得  출가 인연 얻기 쉽다 말하지 말지어다
  昔年累代重根基  숙세 다생 선근 없이 될 수가 없는 것을

  十八年來不自由  등극해서 십팔 년 아무런 자유 없어
  山河大戰幾時休  산전 수전 치르느라 언제 쉴 틈 있으리
  我今撤手歸山去  나 이제 손을 털고 산으로 돌아가니
  那管千愁與萬愁  천만 가지 근심 걱정 아무런 상관 없네


  또 법구경의 다른 게송.


  높은 수행자는 아무것도 모으지 않는다
  탁발로 살아가도 그 공성을 꿰뚫어보네
  열반이란 비어있음이요, 자취가 없는 것
  해탈자의 행로여, 허공을 나는 새가 날갯짓에 자국을 남기지 않듯
  그 가는 길에도 자취가 없네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난 수행자는

  먹고 입는 것에 탐착하지 않는다

  열반이란 비어있음이요, 자취가 없는 것

  해탈자의 행로여, 허공을 나는 새가 날갯짓에 자국을 남기지 않듯

  그 가는 길에도 자취가 없네


  우리 모두 부처님 출가재일을 그냥 보내지 말자. 매일 매일 재발심 하고 재출가할 일이다. 그 공덕 어디 끝이 있으랴. 필경에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