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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7-29 10:11
[사찰순례]청운사 망해사 금산사 귀신사-전북김제의 사찰
 글쓴이 : 수연성
조회 : 6,628  


◈ 전북 김제 하소연지 ◈







愛蓮說(애련설)






周茂叔(주무숙)






予獨愛蓮之出於 泥而不染




여독애련지출어 니이불염







내가 유독 연꽃을 사랑함은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濁淸漣而不妖 中通外直




탁청련이불요 중토외직








맑은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不蔓不枝 香遠益淸




불만부지 향원익청








함부로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리 갈수록 더욱 맑으며









亭亭淸植 可遠觀而不可褻玩焉




정정청식 가원관이불가설완언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음이다.










이글은 송나라 주돈이(1017-73)가 연꽃을 사랑하는 이유를 읊은 시입니다

불교에서는 연꽃에서 종자불실(種子不失), 처염상정(處染常淨),

화과동시(花果同時) 진공묘유(眞空妙有)를 배우게 된다고 합니다.





종자불실(種子不失)은 연꽃의 씨앗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썩지 않고 있다가

조건이 주어지면 다시 싹이 틉니다. 따라서 모든 만남 모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여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더럽고 추해 보이는 흙탕물에 피면서도

조금도 그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아름다운 자태를 잃어 버리지 않으며

탁한 물을 물을 정화 시키죠.





화과동시(花果同時)는 자기도 모르게 만드는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지요.





진공묘유(眞空妙有)는 연꽃은 뿌리부터 줄기까지 텅 비어 있듯

참으로 빈곳에 진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연꽃을 바라보는 것에는 儒佛이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백련이 만발(滿發)하고 만발(萬鉢)한 전북 김제의 사찰을 소개합니다





목적지: 청운사 - 망해사 - 금산사 - 귀신사









◈ 청운사(靑雲寺) ◈






전라북도 만경강 끝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위치해 있는

청운사는 백년도 채 되지 않은 사찰이지만

여름에는 절앞 연지에 피는 연꽃으로 잘알려진 곳이다





절앞의 연지를 지나면 근래 완성된 무량광전(無量光殿)이 나타난다

무량광전은 아미타불을 모신 곳으로 아미타불이란

無量壽 (영원한 수명,Amitayus) 無量光(무량한 광명,Amitabha)을

보장해 주는 부처님으로 일념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사람을

西方淨土(서방정토) 極樂世界(극락세계)로 맞아 가는 부처님이시다.







무량광전 뒤 언덕에는 옛만경 동헌(東軒)을 옮겨와 대웅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대웅전 앞 좌우에 범종각 극락전이 위치하고 있다

극락전은 탱화부분 인간 문화재인 靑雲 道源스님의 차실로도 사용되고 있으며

언덕 아래에는 새로지은 양옥 요사체가 자리 잡고 있다





◈ 하소백련지(蝦沼白蓮池)◈




새우가 알을 품고 있는 지형의 청하산 청운사 앞 연못 하소(蝦沼)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백련꽃이 저수지들을 꽉 채워 피고 지며

사방이 연꽃향으로 가득해진다.






백련은 독성이 없고 특유의 은은한 향과 맛이 있다고

동의보감에도 쓰여 있을 만큼 활용도가 높은 식물이다.

특히 하소백련지의 백련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청백색이 도는 백련만이 피는 곳으로 청아함이 있다.








蓮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한번 만나기로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엇그제

만나고 오는 바람이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연지 한켠에는 수련과 홍련을 심어 두었으며 8월초까지

하소 백련축제가 열린다







◈ 망해사(望海寺) ◈




청운사를 나와 김제평야를 가로지르는 망해사로 가는 길은

수킬로미터 동안 단 한 번의 굴곡도 없는 곧게 뻗어 있다.

도로 주변은 전봇대만 드문드문 서있을 뿐 넓은 지평선이 펼쳐진다.

동네 이름마저 '광활면(廣活面)'이다.



직선 도로가 끝날 즈음에 외딴 마을 하나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고,

심포항 입구 조금 못미쳐 바로 우측으로 난 숲길을 조금 오르면

서해 바다를 만날 수 있다.





◈ 청조헌(聽潮軒) ◈



백제 의자왕 2년(642년)에 부설거사가 지은 사찰을

당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하였으나 절터가 무너져 바다에 잠기고 말았다.

그 후 조선 인조 때 진묵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

절입구에는 요사로 쓰이는 창조헌이 있다





◈ 극락전(極樂殿)과 낙서전(樂西殿) ◈



청조헌을 들어서면 바로 극락전과 낙서전 그리고 종각이 한눈에 들어온다.

극락전 옆에는 족히 300살은 더 먹어보이는 커다란 팽나무 세 그루가

망해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하다







1624년(인조 2)에는 김제 출신의 고승 진묵 일옥(震默一玉, 1562~1633) 스님이

낙서전(樂西殿)을 새로 짓는 등 절을 중창하여 사세를 크게 넓혔으며

1933년과 1977년에 중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ㄱ자형의 이 건물은 팔작지붕이며 앞으로 한 칸 나온 부분에는 마루가 놓여 있고,

그 뒤에 근래에 만든 종이 걸려 있다. 건물의 오른쪽에는 방과 부엌이

딸려 있어서 법당(法堂) 겸 요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낙서전의 단청은 해풍에 빛이 바래고 퇴색하여 오히려 정겨움이

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삼성각(三聖閣) ◈



극락전 옆으로난 돌계단을 오르면 삼성각이 있다





◈ 범종각 ◈



망해사 앞 범종각에서 주위를 둘러 보는 맛은 일품이다.

망해사 앞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그 바다로 지는 석양은

아주 아름답다고 한다





망해사는 바다 위 벼랑에 매달려 있는 운치 있는 절집이지만,

얼마 안 있어 바다가 아닌 골프장 위에 서있을 운명에 처해져 있다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인해 푸른 서해 바다와 드넓은 갯벌이

만나는 이곳이 곧 매립되어 국내 최대의 골프장이 건설 되기때문이다





말하자면, 바다가 바라 보이는 '망해사(望海寺)'에서 바다를 잊어야 하는

'망해사(忘海寺)'가 될 운명인 것이다.







◈ 해우소( 解憂所 ) ◈




망해사의 해우소는 이제 사라져가야 하는 바다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기억하라는 듯 바다를 향해 창을 내어 두었다





욕심버리라는 화장실의 입측진언이 눈에 들어 온다








버리고 또 버리니 큰기쁨일세




탐진치 어둔마음 이같이 버려




한조각 구름마저 없어졌을 때




서쪽의 둥근 달빛 미소 지으리







◈ 금산사 ◈



전북김제시 금산면 모악산에 자리한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나라의 평안과 백성의 복을 기원하기 위해 지은 원찰로 조그마하게 산문이 열리었고,

신라 36대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가 크게 중창하여 33척의 철미륵불상을 모신 후

미륵신앙의 근본도량 그리고 법상종 종찰로 크게 변모되엇다





금산사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국가의 원찰로 삼았었다고 하며,

훗날 자신의 아들에 의해 유배당하기도 한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했었기에

견훤에 대한 많은 일화를 담고 있다.





금산사에 오르는 산길에서 처음 만나는 건물이 「모악산 금산사」라는 현판이

걸린 맞배지붕 양식의 일주문이다. 현판은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의 글씨이다.





◈ 금강문과 천왕문 ◈




일주문을 지나 100m 쯤 오르면 작은 개울 건너에 자리 잡은 금강문이 나타나고

금강문 뒤로 천왕문이 약간 틀어져 서 있다





◈ 보제루 ◈



천왕문을 지나 가람의 중심에 이르면 누각 건물이 보제루이다.

앞면 7칸, 옆면 3칸의 2층 누각식 건물로서 아래층은

절 앞마당으로 오르는 계단 역할을 한다.





◈ 당간지주(보물 제28호) ◈



금강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보물 제28호로 지정된 당간지주가 있다.

절에 중요한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깃발을 걸어서 이를 알리는 일종의

안내판이 당간(幢竿)이고, 이를 지탱하는 것이 지주(支柱)이다.

그래서 당간지주는 반드시 절의 입구에 놓이게 마련이다.





정연한 기단부와 지주의 다양한 조각 등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당간지주 가운데서 가장 완성된 격식을 갖춘 작품으로

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대적광전(大寂光殿) ◈



보제루를 들어서면 정면에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불로 모신

대적광전이 위치한다. 대적광전은 연화장세계의 주인인 건물이다.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는 주로 이 전각을 본전으로 건립하며,

화엄전, 혹은 비로전이라고도 부른다.





금산사의 대적광전에는 특이하게 5여래 6보살이 모셔진 것이다.

이는 한국의 불교의 특징인 통불교(通佛敎)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타의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어느 하나의 사상이나 종파에 치우침이 없었고,

선과 교가 둘이 아님을 일찍부터 체득했던 때문이다.





외부 정면 처마 아래에 걸린 「대적광전」 편액은

석전(石田) 황욱(黃旭, 1898~1993)이 1991년 쓴 글씨다.





◈ 적멸보궁과 미륵전 ◈



대적광전 우측으로는 적멸보궁과 미륵전이 자리잡고 있다

적멸보궁은 방등계단 옆의 옛 나한전 자리에 세워진 예배각(禮拜閣)으로

유리벽을 통하여 방등계단에 있는 사리탑에 경배하며 예불을 드리는 곳이다.





◈ 미륵전(국보 제 26호) ◈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그분의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라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으로

762년부터 766년 사이에 진표율사가 가람을 중창하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가람에 적용하여 세웠으나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인조 13년(1635)에 수문대사가 재건하였다.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등의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가 미륵불의 세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다층의 사찰 건축으로서 미륵전은 법주사의 팔상전과 함께

한국 건축사의 위대한 업적으로 꼽힌다





◈ 오층석탑(보물 제25호)과 방등계단(보물 제26호) ◈




미륵전의 북쪽 위 송대에는 보물 제25호인 오층석탑이 자리한다.

정사각형 판재를 이용한 이 석탑은 높이가 7.2m로서 소박하고 단순한 구조를 지녔다.

본래 기록에 따르면 9층이라 하였는데 지금 남아있는 옥개석의 형태나 체감율 등에서

6층 이상이 손실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층석탑 뒤 높은 대지에 방등계단(方等戒壇)이 있다.

또한 이 계단의 중앙에 보물 제26호인 부도가 1기 있어 그 형태에 따라

석종형(石鐘形) 부도라고 부른다.





불교의 정신을 대표하는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 가운데

계는 으뜸으로서 계를 지킴은 불교의 기본 토대가 된다.

이 계의 정신이 일체에 평등하게 미친다는 의미에서

방등계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한편 방등계단의 성격을 도솔천(兜率天)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인 금산사에는 미륵의 하생처로서 미륵전을 조성하고,

그 위에 도솔천을 구현하여 미륵상생신앙을 나타냈다는 말이다.





◈ 대장전(보물 제827호) ◈




미륵전의 정면 서쪽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다포식 팔작지붕인

대장전(大藏殿)이 자리한다. 대장전은 본래 진표율사가 절을 중창하면서 세운

정중목탑(庭中木塔)으로서 가운데에서 우측부분에 위치하였으며

정팔각원당형으로 조성했던 건물이다.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 1635년(인조 13)에 가람을 중창하면서

본래 목탑이었던 것을 지금과 같은 전각의 형태로 변형하면서

대장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렇듯 여러 차례 변화가 있었지만 전각 꼭대기에는 복발과 보주 등이

아직 남아 지금도 신라 때의 목탑 양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 석련대(보물 제23호)와 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




대적광전 오른쪽 앞마당에 석련대와 육각다층석탑이 있다

석련대는 불상의 대좌로서 정확한 이름은 석조연화대인데,

높이 1.67m, 둘레가 10.3m가 넘는 거대한 작품이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형의 연화대좌인데다가

더욱이 하나의 화강석으로 각 면에 조각한 수법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육각다층석탑은 재질이 흑색의 점판암으로 된 특이한 경우인데,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정교하면서도 우아한 공예적 석탑이다

이 탑은 신라시대의 일반적 석탑에서 고려시대의 화려하고 장식적

공예탑으로 넘어가는 초기의 작품이다.





◈ 노주(보물 제22호) ◈



대적광전 오른쪽에는 독특한 형태의 노주(露柱)가 있다.

노주란 ‘노반지주(露盤之柱)’의 줄임말로서

처음에는 전각의 정면 귀퉁이에 세우는 두 개의 장대였다가

나중에 탑의 상륜부를 구성하는 부재로 사용되었다





◈ 석등(보물 제828호) ◈



대장전 앞에는 고려시대의 팔각석등이 있다.

지대석에서 보주까지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고 전체 높이는 3.9m이다.

사각형의 지대석위에 하대석을 얹고 그 위에 간주석(竿柱石),

연화석(蓮華石), 화사석(火舍石), 옥개석, 보개, 보주의 순서로 조성되었다.

이 석등은 화창에 시설했던 창문만을 제외하면 현재 거의 완벽한 모습을 남기고 있다.





◈ 범종루 ◈



보제루 올라가 가람 중심의 서편에 있다.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하여 볼때

오른쪽에 위치하게 된다.이렇게 범종각이 오른 쪽에 위치하는 이유는

불교의 체용설(體用說)에 입각하여 볼 때 오른쪽은 체(體) 왼쪽은 용(用)에 해당하는데,

소리는 곧 용에 속하기 때문이다.





범종루 옆에는 목조건물의 화재 진압에

대비하여 낡은 소방차 상시 배치되어 했다.








◈ 귀신사(歸信寺) ◈







의상(義湘) 대사가 창건한 귀신사(歸信寺)는 금산사를 나와

전주로 가는 고갯길 우측 청도리 마을에 있다.

처음에 귀신사는 국신사(國神寺)라 불렀다고 하며

최치원(崔致遠, 857~?)이 그의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을

이곳에서 썼다고 한다.고려시대인 12세기 초에 이르러 구순사(狗脣寺),

귀신사 등으로 바뀌었으나 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이런 구조물을 세운 것은 지형이 구순혈(狗脣穴)이어서

풍수지리설에 따라 터를 누르기 위하여 세웠다는 설이 있다.





귀신사는 절이름이 조금 괴기 스럽게 느껴지지만 절이 아담하고

옛 사찰의 고즈녁한 정취가 남아 있는 조용한 비구니 사찰로서

어느 소설가는 "지난 가을에 귀신사는

우선 이름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영원을 돌아다니다 지친 신이 쉬러 돌아오는 자리"
라고 썼다.





◈ 대적광전 (歸信寺大寂光殿 보물 제 826호) ◈



한참 공사중인 주차장 돌계단을 오르면 기단 위에

맞배지붕 건물인 대적광전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건물로 임진왜란때 불탄뒤

곧 복구되었다





◈ 소조비로자나불상 (보물 1516호)) ◈



법당안에는 법(法) 보(報) 화(化)

삼신불(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노사나불)을 모셨는데
삼불좌상이 너무 커서 보는 이를압도하게 하는데

인자하고 부드러운 미소와 허리가 긴 장신형의

체형은 매우 오아하고 품위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건물에 비해 큰 불상은 완주 송광사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두절의 불상들은 같은시대 같은 장인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을 만큼

유사성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기도를 하면서 많은 것을 빌게 된 것 같다

기도는 "사람의 몸에 음식이 필요하듯,

우리의 영혼에는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는 하루를 여는 아침의 열쇠이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의 빗장이다."
라고

마하트마 간디는 말하지 않았던가

나이가 먹어 갈수록 무엇을 바라는 기도보다는

배풀고 들을 수 있는 기도가 진정 필요 할 것이다





◈ 명부전 ◈



대적광전 뒤에 있는 명부전도 역시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문 옆에 금방이라도 무엇인가를 내리칠듯한 자세로 버티고 선

장군상 한 쌍이 인상적이다.







대적광전 뒤 언덕에 올라서면 앞에는 모악산 줄기가 굽이치듯 뻗어가고

뒤로는 푸른 대밭이 멋진 배경을 이루고 있다.





◈ 3층석탑 ◈



언덕에는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3층석탑과 석수가 있다

3층석탑은 바닥돌 위에 여러 장의 돌을 짜맞추어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린 간단한 구조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거의 평행을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 이르러 처마만 살짝 들어 올렸다.





◈ 석수 ◈



3층석탑 앞쪽에는 서쪽을 보고 엎드린 사자상이 있다.

그 위에는 남근석이 올려져 있다. 불교사상과 남근숭배사상이 결합한 구조물이다.





◈ 석탑과 영산전 ◈





절 왼쪽 마당에는 탑재, 배례석과 장대석과 주초석,기단석 등을

모아놓은 곳이 있다. 그 옆에는 석탑, 석등 부재 등을 모아서

쌓은 삼층석탑 형태의 탑 1기가 서 있으며 뒤에는 영산전이 있다







양귀자는 1992년에 쓴 소설 <숨은 꽃>에서 모든 것을 다가지고

있는 텅빈 적요를 찾아 떠나 귀신사를 찾으나

보수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해진 것을 보고 실망한다 거기서

귀신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 보수공사를 자청했다는 김종구를 맞나는데

그는 품삯이 들어 있는 바지 주머니를 보란 듯이 두들기다 말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웃기는 일입니다. 대체 뭐 하러 이 짓을 합니까?

목수하고 이 절에 처음 온 날이 마침 비오는 날이었어요.

'첫눈에 야, 이건 굉장한 절이다.' 라는 느낌이 확 들었지요.

전국의 이름난 절들을 나도 숱하게 봤지만 이런 절은 처음이었거든요.

작가 앞에서 문자 쓰기 거북하지만, 뭐 생사를 초월한,

그런 인생무상 같은 게 가슴을 찍어 누르대요.





그런 절을 싹 뜯어서 울긋불긋하게 만들겠다니 얼마나 웃기는 짓이에요.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다길래 첨엔 이 일을 손 뗄라고 그랬지요.

그런데 왜 마음을 바꾸었는지 아십니까?

조금이라도 덜 웃기게 만들기 위해선 내가 있어야겠다,

이건 정말이지 순수한 내 충정입니다.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짓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구요."






그래서일까? 대적광전은 단청이 칠해져있지 않고

고운 나무결이 그대로 들어난 고운 모습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물이면서도 꾸미지 않고

자연 그대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대적광전의 수수한 잔상이

간직하고 돌아오는 길에 뉴스에서는 김제의 새만금을

이탈리아의 수상도시 베네치아에 버금가는 물과 자연이 어우러진

'명품 복합도시'로 만들겠다는 발표가 라디오에서 발표되고 있었다









2009년 07월 05일





"끝"





Ernesto Cortazar ◈ Solitude






천지연 09-08-03 10:46
 
수연성 보살님!! 각 사찰의 자세한 설명 감사하구요,
 단편 영화를 본것처럼 ^^ 구경 자알 하구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