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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9-02 18:54
곰에게 물려도 지혜가 있으면
 글쓴이 : 돌부처
조회 : 2,820  
어떤 사람이 산에 갔는데 큰 곰이 나타나서 잡아먹으려고 덤빈다. 하도 큰 놈이 덤벼서 우선 급하여 큰 나무 뒤에 숨으니, 미련한 곰이 나무 뒤로 와서 사람을 잡아야 할 텐데 나무를 껴안은 채 다리를 들어 사람을 껴안으려고 하니, 사람은 지혜가 있어서 곰 다리를 꽉 움켜잡았다. 곰이 사람을 물려고 하니 나무가 있어서 못 물고 어디로 달아나려고 해도 사람이 두 다리를 꽉 잡아서 못 가고 꼼짝 못하고 있다. 사람은 곰이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하니 곰 다리의 냄새는 누리하게 나지만 다리를 놓으면 죽을 터이니 그것이 생명선이라 밥도 굶고 아주 죽을 지경인데 곰도 죽을 지경이다.

  큰 도끼를 지게에 얹어 왔는데, 누가 큰 곰 다리를 거머쥐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고 여기 있다가는 저 곰한테 죽겠구나’ 하고 달아나려고 하자, 곰 다리를 거머쥔 이가 나무꾼을 부른다.

  “여보게, 그 도끼로 이 곰을 잡자. 이 곰쓸개는 금보다 비싸다네. 이 곰이 쓸모가 많으니 이 곰을 잡자.”
  나무꾼이 이 말에 솔깃해서 도끼를 가지고 왔다.
  “여보게, 이 다리를 좀 쥐고 있게나. 나는 곰을 많이 잡아 봤는데 도끼로 요긴통을 바로 딱 때려야 잡지, 만일 잘못해서 설 때려 놓으면 자네도 죽고 나도 죽네.”

  많이 잡아 봤다고 하자 나무꾼은 슬며시 곰 다리를 거머쥐었다.
  곰 다리를 잡고 있던 사람은, 사흘씩이나 굶고 곰에게 시달리다가 곰 다리를 다른 이에게 전장시켜 놓으니, 어찌나 좋던지 “휴우.”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또 실컷 쉬고는 한다는 말이 “여보게, 내가 말은 그렇지만 실은 곰을 잡아보진 못했다네. 그러니 내가 잘못 섣불리 곰을 치다가는 자네도 죽고 나도 죽네. 그러니 누가 오거든 나처럼 자네도 다리를 전장시카고 가게나.” 하고 달아났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처녀로 있고 총각으로 있을 때에는 아무 걱정 없었는데, 장가가고 시집가니까, 마치 곰 다리를 거머 쥔 것과 같다. 꼼짝없이…. 그러니 이 곰 다리, 집안 살림살이의 곰 다리는, 아들 장성시켜 며느리 맞아서 전장시키고, 그러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말을 왜 하는가 하면 본래 없는 것을 결혼해서 가정 이루어 놓으니 마치 곰 다리를 거머쥔 것과 같은 처지라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모든 일에 당기면 늘어지고 놓으면 오그라지는 신축성을 가지고 마음을 쓰게 하는, 폭을 너르게 하고 남에게 관대하게 포용하고, 물질과 사람에 초월한 정신을 가지고 멋들어지게 살라고 하는 말이다.

  부모 태중에서 나올 때 영감을 업고 나왔나, 마누라를 안고 나왔나 자식을 안고 나왔나. 빈 몸 빈손으로 나왔는데 이것에 애착이 붙어서 놓으려 해도 놓을 수 없고, 밤낮없이 걱정만 한다. 그런 망상 다 버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본연의 천진면목 父母未生前 本來面目, 그 망상 없는 경지에 가서 생각하면 올바른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 현실을 實相 그대로 소중하게 여기긴 여겨도, 너무 집착하지 말고 물질과 사람에 모든 사람들이 집착하지마는 초연히 생각하고, 초월한 정신으로 사물을 대하면 모든일을 달관할 수 있는 것이다.

  반야 바라밀이 반야 바라밀이 아니라 이 이름이 반야 바라밀이요, 금일 설법이 설법이 아니라 리 이름이 설법이니라.

  《般若經》에 “반야 바라밀이 반야 바라밀이 아니라 이 이름이 반야 바라밀”이라 하였으니 이 이름뿐이다 이 말이여. 여러분이 김 아무개다 박 아무개다 하고 이름도 이t고 성도 있지마는 어디 본래 이름이 있나. 부모 태중에서는 이름도 성도 없는 것인데 다만 몸에 대명사로 붙여서 부르기 편리하게 한 것이다. 그와 같이 眞理法은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부처님과 祖師가 말을 붙여서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한 것일 따름이다.

  그러니반야 바라밀이 반야 바라밀이 아니라 이 이름이 반야 바라밀이요, 오늘 설법이 설법이 아니라 다만 이 이름이 설법인 것이다.

  喝 한 번 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