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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0-21 16:16
생사 윤회에서의 해탈
 글쓴이 : 돌부처
조회 : 3,339  
조선조 말엽에 정원용鄭元容이라는 글만 읽던 청빈한 선비가 있었다. 그 때에는 글을 읽어 과거를 보아 합격 해야만 벼슬을 살아 녹을 타 먹게 되니 자꾸 글만 읽었다. 글만 읽고 있으니 장사도 하지 않고 농사도 짓지 않고 일체 경영하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재산 좀 물려받았던 것 다 없어지고 나중에는 팔아먹을 것을 다 팔아 먹고 나니, 끼니를 이을 수 없을 정도로 궁색하게 되었다.

하루는 사랑방에 앉아 있자니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부인이 있는 내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자기 처가 무엇을 먹다가 무릎 밑에 황급히 감춘다. 부부간인데 아무리 자기 배가 고프더라도 배고프기는 마찬가지일텐데, 밤 한 톨이라도 갈라 먹어야 될 처지에 자기가 들어가니 무엇을 먹다가 황급히 무릎 밑으로 확 넣는다.
원 이럴 수가 있나 하고 잔뜩 틀어져 나오다가 안마당에서 돌아서서 다시 들어가 처에게
“여보, 우리가 부부지간인데 밤 한 톨이라도 서로 갈라 먹어야 할 형편인데 무얼 먹다가 다리 밑에 감추니 그럴 수가 있소”
하고 나무라니 처가 한참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당신 나에게 무얼 먹으라고 주었소? 아무것도 주지 않고 무얼 먹는다고 그리 야단이요, 야단은…… 내가 배가 어찌 고프던지 사방 찾아봐도 먹을 것은 없고, 옛날 우리 잘 살 적에 쓰던 녹두가루 비누가 그릇에 조금 붙어 있기에 그것도 곡식이라고 빨다가 당신이 들어와서 하도 부끄러워 말은 못하고 당신 민망해할 까봐 무릎 밑에 감추었는데, 이것 빨아봐요. 어디 무엇이 붙어 있는가.”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터질 듯 아프다. 도대체 얼마나 배가 고프면 그것도 곡식이라고 빨았겠나 생각하니 남의 가문의 딸을 데려다가 저리도 배를 주리게 하다니, 이거 내가 사람도 아니다.
자기의 배고픈 생각은 어디로 달아나고 사랑방에 가만히 앉아 무엇을 해서 처를 굶주리지 않게 하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 한다.어찌해야 되겠나? 하지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쓸데없는 일이었다. 가히 백 가지 생각이 가관 이었다.
농토가 있어서 농사를 짓겠나, 돈이 있어서 장사를 하겠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신통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당장 어찌할 도리가 없고 별수 없이 도둑질을 하기로 작정 하였다.
그러나 막상 도둑질을 하려고 하니 안 배운 도둑질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담장을 높이 쌓은 집에는 갈 수도 없다. 울타리도 담도 없는 집으로 오늘밤에 도둑질을 하러 간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밤 사방이 어두워지자 동네로 돌아다녀 봐도 전부 담장이 높이 둘려 있어서 어찌 해볼 수가 없었는데, 마침 한 집에 가보니 울도 담도 없는데 뒷마루의 자루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데 손으로 만져보니 나락이 두어 말쯤 되어 보였다. 그 집에도 울도 담도 없이 가난하게 사는 모양인데 아마 먹을 것이 없어서 식량으로 구해다 놔둔 딱한 사정같이 보였지만 급한 김에 옳다 이거라도 됐다 하고는 울러 메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자루를 막 내려놓으려는데, 한 생각이 빙 돌기를
“내가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저 사람들은 그럼 무얼 먹나. 그 사람들도 딱한 처지에 어디서 구해다 놓은 이것을 내가 어떻게 먹겠나, 내가 굶었으면 굶었지 이 짓은 못 하겠다”
그렇게 마음이, 본래 마음으로 돌아왔다.
나락자루를 울러 메고 다시 그 집에 갖다 놓고 와서 사랑방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도둑질을 하려고 해도 생각이 그렇게 들고 이거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홀연히 꿈도 생시도 아닌 순간에 허공에서 공창空唱하기를
“정원용이 이제 복 받아라!”
하는 소리가 완연히 들린다.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는가 하고 있는데 이튿날 동네 사람들이 의논하기를 정원용이 내외를 “이제 저대로 그냥 놔두면 그대로 굶어 죽겠다. 우리 동네에서 힘을 모아 도와주자” 하고는 양식도 갖다 주고 옷도 갖다 주어서 그날부터 굶는 것을 면했다.
얼마 후 과거를 봐서 진사 급제를 하고 벼슬이 차차 높아져 영의정까지 올라갔다. 그 지위가 높고 좋은 자리라서 바람을 잘 타기 때문에 1년 아니면 기껏 해봐야 2년 하면 갈려 나오는 자리인데 정원용은 10년 동안이나 독상獨相을 하였다.
생각 한 번 잘 해서 천지가 감동하여 복을 받은 것이다. 한 생각 일어나면 시방세계十方世界 모든 부처님이 다 알고 천복天神과 지기地氣가 다 안다.
정원용의 일화가 또 있다.
임금이 간혹 간신들의 아첨하는 말만 듣고는 사실을 직접 보지도 않고 확인도 하지 않아 정사를 그르치는 수가 있는데 신하로서 “전하께서는 직접 보지 않으신 것은 믿지 마십시오” 하고 간할 수도 없고 해서 한 꾀를 내었다. 하루는 자기 처에게 말했다.
“내가 대변을 보았는데 항문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휙 날아가더라. 그러니 자네만 알고 있지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되네. 알았지?”
“여보, 내가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할 까닭이 있겠소?”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이상야릇한 말을 들어놓았으니 참을 수가 있나, 당장 자기 옷 만드는 침모에게
“영감 항문에서 파랑새가 후르르 날아갔는데, 너만 알고 있지 절대로 누구한테든지 말하지 말아라.”
하고 다짐을 받아 놓았지만, 웬걸 침모는 더 참기 힘든, 정말 신기한 수다거리여서 얼마 있다가 식모에게 이 희한한 이야기를 하고, 식모는 자기 친한 이들에게 말해서 삽시간에 그 소문이 장안에 확 퍼졌다.
‘정원용 대감 항문에서 파랑새가 날아갔단다.’
이런 소문이 여기저기로 퍼져나가고, 그 말이 궁녀들의 귀에 들어가서 궁녀들은 왕비한테 전하고 왕비는 또 임금에게 전했다.
임금이 듣고 생각하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항문에서 파랑새가 날아가다니…. 조회가 끝나자 임금은 다른 신하들은 다 보내고 정원용 대감만 남아있게 해서 물었다.
“내 듣자 하니 경의 항문에서 파랑새가 날아갔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
“파랑새가 항문에서 날아갈 수도 있겠습니까? 신이 거짓말로 신의 소첩에게 내 항문에서 파랑새가 허공으로 날아갔는데 자네만 알고 있게 하고 다짐을 받아 두었는데 이 말을 침모에게 전하고, 침모는 식모에게 전하고, 식모는 또 자기 친한 이들에게 말해서 자꾸 전해져서 장안에 소문이 퍼져 황공하게도 전하께서도 아시게 되었습니다. 하온즉 전하께서 직접 눈으로 보시거나 확인하지 않으신 일은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믿지 마시옵소서.”
이런 식으로나 간할까 신하로서 밑도 끝도 없이 전하께서 직접 보지 않은 일은 믿지 말라고 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참 지혜 있는 대감이다.
이런 말을 내 놓으면 하지 말라고 해도 더더욱 누구에게 말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하고 계산적으로 잘 짜가지고 그런 말을 퍼뜨린 다음 임금의 귀에 들어가니, 전하께서는 직접 확인하거나 보지 않은 일은 믿으시지 말라고, 간하기가 아주 쉬운 일이다.
임금도 그 말에 깨달은 바가 컸다.
본래 이 다함 없는 이치는
닿는 곳마다 옛길을 통하였도다
元來저■無窮理   
觸處無非古路通
 
할 한 번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