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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1-02 19:22
황제와 해몽가
 글쓴이 : 돌부처
조회 : 3,601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나라에 꿈을 해몽해주고 살아가는 이 가 있었다. 그 나라 임금이 그 사실을 알고 생각하기를 “꿈이란 것은 허망한 것이다. 더욱이 꿈을 해몽해주고 살아간다니 이것은 반드시 사람을 속이고 물건을 받는 짓일 것이다. 벌을 주어야겠구나.”하고서는 그 해몽하는 이를 대궐로 불러 들였다. 임금이 억지를 대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먹고 물었다.  “짐이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대궐에 기왓장 하나가 비둘기가 되어 날아가더라. 이것이 무슨 조짐이냐?”  “예 그것은 궁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 죽을 징조입니다.”  “저 놈을 옥에 가두어라.”  임금은 꿈도 꾸지도 않고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꾸며댔는데 그것을 또 해몽하였으니 틀림없이 엉터리 같은 수작일 것이라고 자신만만해서 하루를 지내보고 요사스럽다는 죄목으로 죽이려고 한 일인데, 막상 한나절이 지나자 갑자기 궁녀들이 싸움을 해서 궁녀 하나가 죽었다. 임금은 꾸지도 않은 꿈 이야기를 지어서 하였을 뿐인데 해몽한 대로 사람이 죽었으니 하도 이상해서 그 해몽하는 이를 불러다가 물었다.  “네가 꿈을 해몽해주고 살아간다 하기에 짐이 생각해 보니, 꿈이란 것은 허망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것인데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하고 너를 죽이려고 일부러 꾸지도 않은 꿈을 꾼 것처럼 말했는데 해몽한 것과 같이 사람이 죽었으니 어찌 된 일이냐?”  “예, 실은 꿈이란 것은 허망한 것입니다. 그리고 임금님께서 잠속에서 꾸는 것만이 꿈이 아니라 눈을 뜨고서도 한 생각 일어나면 그 것이 곧 꿈이라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즉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곧 꿈이다. 그 임금도 아주 영특한 임금이라서 그 사람에게 상을 후하게 주어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 임금의 말대로 꿈은 허망한 것이다. 어떤 꿈을 꾸어도 그것을 생각할 것도 없고 낮에 생각했던 것이 밤에 일어나는 한갓 생리적 작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무슨 꿈을 꾸더라도 해석하려고도 하지 말고 관심 가질 것도 없다. 부처님의 올바른 법을 믿고 수행하는 이들은 항상 올바른 생각으로 자신을 지키고 생각이 진실하면 항상 편안한 것이다.
  가고 오는 것이 도道 아님이 없고 삼라만상이 도道 아님이 없고 잡고 놓는 것이 선禪 아님이 없는데 배우는 이들은 이렇게 말만 듣고 알아도 안 된다. 날개도 나지 않은 새가 날려고 하다가 떨어져 죽게 되는 격이다.  선禪에 대해서 여섯 가지의 묘문妙門이 있다. 이것은 참고삼아 들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지 꼭 그렇게 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화두話頭를 들다가 화두를 버리고 이것을 하라는 말도 아니다. 참고적으로 한번 들어두라는 말이다.
 수식관數息觀이 있다. 이 수식관을 하면 망상이 복잡하게 일어날 때 숨을 고르면 망상이 어느 정도 잦아진다. 숨을 쉴 때 들이쉬고 내쉬는 이것을 열까지 세고 버린다. 왜 열까지 세고 버리느냐 하면 열이 넘으면 망상이 생긴다. 들어가는 숨을 세고 나오는 숨도 세면 분별이 많아지니 들어가는 숨은 빼고나오는 숨만 세는 수도 있다. 열 번 씩 세다가 혹은 세 번이나 다섯 번이나 일곱 번까지 세다가 망상이 생기면 잘못 세었다고 다시 센다. 열 번까지 가지 말고 이렇게 숨을 세는 데 다른 생각이 들어올 수가 없기 때문에 정신이 집중된다. 이것을 수식관이라 한다.  다음은 수문隨門인데 미세한 생각이 숨을 따라 들어가는데 들어가는 것도 알고 나오는 것도 아는 데 길고 짧고 차고 더운 것을 이와 같이 안다. 그 모든 선禪이 이것으로 부터 발하는 것을 수문이라 한다.  지문止門은 숨 쉬는 마음이 고요하고 고요히 하는 것을 지止라 한다. 즉 이 마음이 본래 고요한 것이지만 생각의 파도가 분주스럽다. 그래서 지극히 고요한 데 들어가야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한다. 지극히 고요한 데 들어가야 한다. 본래 고요한 자리이건만 자기 스스로 망상 분별을 일으켜서 그 생각 파도가 출렁거린다. 지극히 고요한 데 들어가서 그 마음이 맑고 밝아지면 편안해 진다. 그래서 지止를 의지하여 생각이 고요하고 요란치 않는 이것을 수隨를 버리고 지止를 닦는 문門이라 한다. 마음에 파동이 없으면 모든 선禪이 정定하여 지니 이것을 지문이라 이름한다.  관문觀門이란 분별을 방편으로 끊는 것을 이름하여 관觀이라 한다. 수행하는 이가 지문을 인해서 제선諸禪을 증득하나 지혜를 밝히지 못하면 밝지 못한 마음이 모든 선정에 혼미하여지나 마음을 관하여 오음의 헛됨을 분별해서 알면 전도顚倒가 이미 없어지나 샘이 없는 방편이 이로부터 개발됨으로 관觀으로써 문을 삼는다.  환문(還門)이란 마음을 굴려서 돌이켜 비추는 것을 환문還門이라 한다.
  수행자가 관조하는 것을 닦더라도 만약 내가 능히 관하고 비추어서 전도심顚倒心을 파하더라도 내라고 하는 의혹이 오히려 외도外道들 보다도 더 큰 것이 남기 때문에 마땅히 마음을 굴려서 능히 마음을 관조하여, 헛된 가운데는 참됨이 없는 줄 요달了達하면 그 관조함으로써 생기는 나를 집착하는 전도됨이 없어지고 샘이 없는 방편의 지혜가 자연히 밝음으로 환還으로써 문을 삼는다.  정문淨門이란 마음이 의지할 바가 없으면 망심의 파도가 일지 않는 것을 정淨이라 한다.  수행자가 환還을 닦을 때에 능히 전도심顚倒心을 관조觀照하여 파하더라도 참으로 밝은 샘이 없는 지혜가 밝지 못하면 능소가 없는 곳에 머무름이나  곧 이것이 한갓 생각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지혜가 더러움에 물듦이 없으나 이렇게 깨달아서 알면 머무름도 집착도 하지 않고 맑고 청정한 즉, 참되고 밝은 것이 이것을 말미암아 개발된다. 곧 삼계三界의 얽힌 의혹을 끊고 삼승三乘의 도를 증득함이나 이것이 정淨으로써 묘문妙門을 삼는 것이다.
  위에 말한 것을 육통묘문六通妙門이라 한다. 차례로 서로 통하여 참으로 묘한 열반涅槃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수행자의 방편문이다. 하지만 말과 글로써 하루 종일 말하고 십년 백년을 말하더라도 말은 말이요 글을 글일 뿐이다. 어찌 이 도리를 거량할 수 있겠는가.

 낙동강은 흘러 흘러 끝이 없는데
 큰 바다엔 고깃배만 오락가락 하누나 
 洛東江水流無盡 
 大海漁船去復廻 

할 한 번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