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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2-24 10:30
菩薩의 六波羅蜜
 글쓴이 : 돌부처
조회 : 4,769  
법좌에 올라 한참 묵묵히 있다가 주장자를 세 번 치고 이르시기를

  제비가 지지배배 지저귀고 꾀꼬리 우짖는 정경 속에 
  푸른 하늘은 바다런듯한데 붉은 태양이 아름답네
  燕語鶯歌聲色裡
  碧天如海日光紅

  보살菩薩은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아서 성도成道하여 중생을 교화한다.
  바라밀이란 말은 범어梵語이니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 피안彼岸의 이상의 경지에 이르름을 말하는 것인데, 본래 이 진여법계에는 너도 없고 나도 없으니 누가 바라밀을 받으며 누가 얻겠는가. 받을 것도 없고 줄 것도 없는 것이다. 다만 중생들의 모든 일들은 한 가지 업의 과보요 불별과 죄복罪福을 주는 상相은 없는 것이다.
  다겁다생으로 십악죄十惡罪를 지으며 또 이것을 쉽게 소멸하지 못하고 이 무섭고 무거운 짐을 다음 생까지 짊어지고 가게 되며,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재에도 나쁜 업을 자꾸 지어서 보이지 않는 업이 마치 누룽지 눌 듯 붙어 있는 것이다.  이 마음이 본디 청정하고 고요한 것을 자기가 꾸정거려서 이렇게 번뇌스럽게 된 것이다. 마음을 비울 줄 아는 것은 참으로 오묘한 진리이다.
  보시는 물질의 보시보다 법보시가 제일이 되나니 그래서 이름을 단바라밀檀波羅蜜이라 한다.
  옳고 그름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계체戒體가 청정함이니 이 이름을 시바라밀尸波羅蜜이라 하고 지계라 한다.

  계를 지킨다는 것은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한 것을 말한다. 몸이 청정하다는 것은 살생·도둑질·음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입이청정하다는 것은 남을 속이는 말·이간질·폭언·식언 등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뜻이 청정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망상번뇌가 뜻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음이란 안도 바깥도 중간도 없는 평등체라서 제가 스스로 나쁜 생각을 해서 그렇지 이 마음이란 남들이 아무리 물을 들이려해도 물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마음자리란 물건·시간·공간·피차 등등의 어떠한 표현도 맞지 않는 것이니 어찌 말로 설명하겠는가. 물들일 수 없으며 허공같이 평등한 이것을 이름하여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이니 곧 인욕忍辱이다.
  모든 한량없는 상相을 다 여의고 필경에는 자성을 깨달아서 모든 상相에 머물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이니 곧 정진精進이다. 이렇게 하여 정진하려는 이들은 세상에서 남이 즐기는 오욕락을 함께 따라하며 정진도 한다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며, 바보 아닌 바보가 되어 정진에 노력을 해야 무위진인無位眞人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을 당하던지 고요히 하며 요란스럽게 분주를 떨지 말며 태연히 대하는 것을 이름하여 선바라밀禪波羅蜜이니 곧 선정禪定이다.  열반涅槃이란 생사를 해탈하는 것이요 진여眞如는 성리가 참되어서 변치 않음을  말함이니 이 마음자리가 본래 청정함을 진여라 한다. 여여如如한 이 자리는 그 당체를 볼 수가 없고 희론戱論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분별의식을 다 여의고 그 방편에도 머물지 않음을 여여라 하나니 여여하여 용처도 없으며 닦아도 닦음이 없고 행하여도 행함이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을 경에 이르기를 방편해方便解라 하나니 이름하여 반야바라밀이요 곧 지혜인 것이다.

  한 물건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있고 일체 중생에게 다 있는데, 이 물건은 천지보다 먼저 생겨 시작이 없고 천지 뒤에 있어 마침이 없다.  마음이 비색非色이니 색에 속하지 않으며 마음이 비록 색을 비우니 색에 속한 것이 아니며, 마음이 비록 비색을 비추나 비색에도 속한 것이 아니며, 마음이 색상色相이 아니나 마음을 비색이라 하기 어렵다. 또 색공色空도 색심色心도 아니나 허공처럼 텅 빈 것도 아니다.

  불법에는 보살승菩薩乘·성문승聲聞乘·연각승緣覺乘의 삼승三乘이 있으니 보살은 공한 것을 비추고 공하지 않는 것도 비추며, 연각은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을 듣고,깨닫는 것을 말하나니 공한 것은 비추어도 공하지 않은 것은 비추지 못하며, 성문은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듣고 깨닫는 것을 말하나니, 공한 것조차 얻기가 어려우니 공하지 않은 것은 물론인 것이다. 보살·연각·성문승의 차제次第가 대강 그런 것이다.

  육조六祖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마음자리는 항상 공적空寂하여 한 생각 범부의 마음이 문득 사라지면 곧 부처의 성리를 본다.”
  하였으며 《화엄경華嚴經》에는
 
  “불자야, 여래의 지혜는 이르지 아니한 곳이 없고 중생도 여래의 지혜를 갖추자 아니함이 없다.”하였다.
  이 뜻은 공기 가운데 전기 전자는 우리의 몸에도 통하고 흙에도 통하고 모든 삼라만상에 다 통하듯이, 부처님의 지혜는 어떠한 곳이든지 이르지 않는 곳이 없고 중생의 지혜도 여래의 지혜와 똑같이 어느 누구에게나 참된 부처가 있는 것이다.
  《금강경金剛經》에 이르기를

  만약 어떤 모습으로 나를 보려하거나
  음성 한 가운데서 나를 찾는다면
  이것은 삿된 도를 행하는 사람이니
  여래를 보지 못한다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이 말씀은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의 참부처, 그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중생들의 마음 속엔 항상 전도顚倒된 망상이 꽉 차 있기 때문에 보고 듣는 것도 망견으로 보고 듣기 때문에 항상 불안스러운 것이니, 불교를 믿는 이들은 정신正信과 정견正見을 지니고 생활을 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다 없어진다.

  《화엄경》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집착이라는 것은 한이 없는데 전도·망상·집착으로 말미암아 소소령령한 이 지혜자리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만약 망녕된 생각을 여의면 일체지혜와 또 걸림없는 지혜가 곧 나타남을 얻는다.”하였다.

  업경대業鏡臺란 말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눈을 감고 어릴 때부터 지내온 모든 일들을 곰곰 생각해보면 잘잘못이 다 나타나는데 그것이 곧 업경대다. 이 업경대가 맑고 깨끗해지도록 노력해야겠다. 이 세상에는 좋은 이도 살고 나쁜 이도 살고 어진 이와 협잡꾼 또는 별별 사람이 어울려서 사는데, 이것은 모두 한 생각의 차이로서 엄청나게 EKs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이 한 생각 차이에 성현도 되고 범부도 되고 악한 사람도 되고 착한 사람도 되니, 한 생각을 잘 돌이키고 불교를 잘 믿어서 불교를 일상 생활에 조화調和를 잘 이루어가며 생활해야 하나니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이 이름이 반야바라밀이요
  설법이 설법이 아니라
  이 이름이 설법이니라

  할 한 번 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