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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1-14 09:24
여덟 가지 福田
 글쓴이 : 돌부처
조회 : 4,143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세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이 진리眞理는 원래 말이 없고 무언無言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대각大覺을 이루신 뒤 49년을 설법을 했지만 중생을 위해서 부득이해서 한 것이지 그 진리眞理자리는 말로 못하고 글로써 써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설법할 것이 없는 것이 이 이름이 설법인 것이다.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이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다. 다만 이 자리는 언어문자言語文字가 전부 떨어졌는데 부득이해서 여러 사람을 위하여 말과 문자로 하는 것이고 눈으로 마주 보는 데 도가 있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그래야 알지 이 진리를 말이나 글을 가지고 알려고 하면 백년을 말을 하고 백년을 글을 써 내도 말은 말이고 글은 글이지 이 자리를 그려 내지 못하고 써 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항상 말하지만 이 사바세계를 무대로 연극 한바탕 잘하고 멋지게 살다가 가야한다고 하니까 마치 춤이나 추고 노래나 부르고 술이나 먹고 뛰노는 것이 멋지게 살라고 하는 줄 아는데 그것이 멋지게 사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사람에 초월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이 사바세계를 무대로 연극 한바탕 잘 하는 사람인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하나 성공을 하려고 하면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은 굳센 생각으로써 원력願力을 세워서 앞으로 전진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걱정이 있어도 술 한 잔,  잠이 안 와도 술 한 잔, 술만 자꾸 먹다가 나중에는 술에 중독되어 버리면 그만 폐인이 되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죽게 되는 것이다.

  여덟 가지 복전이 있다.
  첫째는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에 신앙을 가지고 공경해야 된다. 아무리 많은 부처님이 있다 해도 이 사바세계는 석가여래 부처님이 교주敎主니까 석가여래 부처님이 불佛이고, 부처님의 팔만장경八萬藏經이 법法이며,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가 승僧인데, 이 불법승 삼보를 공경할 줄 알아야 복을 받는다.

  둘째는 효양부모孝養父母이니 남의 자식 된 사람은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복을 받는다. 우리가 법法을 먼데서 구하지 말고 내 부모가 곧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부모에게 효성을 가져야 복이 온다. 그런데 요즘 보면 부모 된 사람은 자기 자식이 감기라도 들면 신약 구약을 가리지 않고 온갖 약을 먹여서 병을 낫게 하려고 하는 데, 자식은 부모가 감기가 들어서 콜록 콜록하고 뒷방에 가서 아파 누워 있어도 나이 많은 사람에게 으레 있는 천식이나 노병老病이라 하면서 약 한 첩 쓰지 않는다. 이래서는 복을 받지 못한다.

  셋째는 급사병인給事病人이니 어떠한 사람이던지 병든 사람이 있거든 내 힘 있는데 까지 구완을 해주면 복을 받게 된다. 복이라는 것은 내가 노력하고 행하고 닦고 증득證得해서 복을 짓는 것이지 복이 저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복 파는 사람이 그냥 복을 한 덩어리 집어서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부처님은 내 몸을 위해서 이 세상에 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났다고 한다. 그러니 남을 위해서 수고스러운 일을 많이 하고 남을 도와서 좋은 일을 많이 해 주면 그것이 복을 짓는 일이다.

  넷째는 구제빈궁救濟貧窮이니 가난하고 궁한 사람을 구제해 주면 복을 받는다. 가난하고 궁해서 복을 못 짓는 사람에게 내 힘 있는데 까지 그 사람을 도우면 그것이 복 짓는 것이다.

  다섯째는 광로의정廣路義井이니 평원광야에 물이 없는 데 우물을 파 가지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에게 다 먹도록 해 주면 복이 된다. 자기가 사는 동네에 물이 없거든 돈을 내어 가지고 우물을 파서 온 동네 사람이 다 먹도록 해주면 그것이 곧 복을 짓는 것이다.
 
  여섯째 건조교량建造橋梁이니 많은 사람들이 개울에 다리가 없어서 바질 걷고 건너다니는 데에는 어디든지 다리를 놓아서 바질 걷지 않고 건너가도록 해 주는 것이 복을 짓는 것이다.

  일곱째는 치평험로治平險路이니 험한 길에 치도를 해서 다른 사람이 다 잘 다니도록 해 주는 것이 복이 되는 것이다.

  여덟째는 무차법회無遮法會니 법회를 열어서 어떤 사람이 오든지 법문을 듣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복을 짓는 것이다.
  우리가 부모 태중에서 이 세상에 나올 때 걱정하고 머리 아프고 가슴 아파가면서 살라고 나온 것이 아니라 모든 삼라만상을 사람이 다 수용受用하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멋지게 살도록 되어 있다.
 사업하는 사람이 돈이 있다 없다 하지마는 돈은 은행에 꽉 쌓여 있고 쌀은 시장에 있고 모든 물건이 점방마다 가득히 쌓여 가지고 있는데 사람이 자기가 못나서 그것을 사용을 못하는 것이다. 비록 돈이 없더라도 그 돈에 얽매어 가지고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아파서는 안 된다.

  우리 사람이나 나는 짐승이나 기는 짐승이나 모든 동물이 자기 업業대로 살게 되어 있는데 사람은 집을 짓지마는 짐승이 어디 집을 짓는가. 집을 안 짓더라도 겨울이 되면 얼어 죽지 않게 준비를 해 가지고 있다. 개구리와 뱀은 겨울을 지낼 준비를 하지 않아도 땅 밑에 들어가서 호흡하며 한 겨울을 살고 나온다. 그러니 사람도 자기 업대로 살게 되어 있는데 자기가 잘못해 가지고 곤란을 당하고 걱정을 하지만 한 생각 돌이키면 그만 근심 걱정이 없어지는 것이다. 신선神仙의 약은 콩알만큼만 먹어도 일체의 모든 병이 다 떨어져서 오래 살게 되는데, 법문法門도 많이 하는 것이 법문이 아니라 다만 한 구절이라도 진리법문을 들으면 그만 업장이 얼음 녹듯이 녹는 것이다.

  고덕古德에게 누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의 경계境界입니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있지 아니한 것도 취하지 아니하고 없지 아니한 것도 취하지 아니한다.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이 이름을 부처님의 경계라고 한다. 그러니 만약 사람의 마음이 목석木石과 같아서 유지有智로서 아는 것을 취하지도 아니하고 무지無智로서 불심佛心을 알려고 하지 아니한다. 또 가히 유심으로서 법신法身을 알려고 하지 아니하고 또 가히 상相을 가지고 모든 소해所解를 알려고 하는 것이 다 망상분별이다.
  너의 종종해種種解가 가히 자심自心의 계교計較요 자심의 망상이다. 제불지혜諸佛智慧는 가히 설說해서 사람에게 보일 수도 없고 또한 감추고 숨길 수도 없고 선정禪定으로서 측량할 수도 없다. 알음알이가 끊어지고 아는 것도 끊어진 것이 부처님의 경계다. 또한 가히 측량할 수도 없는 것이 이 이름이 불심佛心이다. 만약 능히 불심을 이와 같이 믿는 자는 또한 곧 무량항하사無量恒河沙 번뇌가 없어질 것이요, 만약 능히 심념心念을 두어 불혜佛慧를 생각하는 자는 도심道心 이 날마다 장하게 커질 것이다.“

  그러니 참선하는 사람은 화두話頭를 따져가며 알려고 하면 안 된다. 과학은 따져서 알려고 해야 되지만 참선하는 이 법은 따지면 염념念念히 멀어지기 때문에 다지는 것이 아니다.

  물건이 때를 만나니 각기 향기를 얻어
  화창한 바람이 이르는 곳에 모두 봄빛일세
  인생의 고와 낙은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데
  정안正眼으로 비추어 오니 만사가 편안해지네
  物物逢時各得香
  和風到處盡春陽
  人生苦樂從心起
  正眼照來萬事康


  《대방광불화엄경大方光佛華嚴經》의 대의가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니 만약 누가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할 진대는 응당 법계의 성리로 관찰하라. 일체가 오직 마음의 지음이니, 그러니 마음 하나 잘 쓰도록 해야 되는데 마음 잘 쓰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내가 늘 얘기하지마는 사람이 얼굴마다 바를 정正자를 써 붙였는데 마음은 비뚤어지게 쓰고 있다.

  오늘 얘기할 것은 시익권수示益勸修이니 착한 것을 힘들여 잘 닦도록 권하는 말인 데 온전한 마음으로써 삼매三昧를 닦는 자는 현세에 항상 열 가지 이익을 얻는다.
 
삼매라고 하는 것은 정定이라고도 하고 정수定受라고도 하는데 정이라고 하는 것은 가만히 있어서 모든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항상 삼매를 닦고 내 마음에 하찮은 생각이 전연 없으면 정定에 들어간다.
 
  보검을 만드는 데에는 쇠를 불에 넣어서 벌겋게 달구어 두드리면 하찮은 쇠는 쇠똥이 되어서 튕겨 나오는 데 천번 만번 두드려서 쇠똥이 다 빠지고 쇠의 정수精粹만 남는 것이 보검이다. 또 땅속에서 금을 파면 금속에 은도 있고 동銅도 있고 철도 있고 연鉛도 있는데 이 잡철을 전부 빼내고 이십사금이 되어야 세상에 통용하는 보배가 된다.
 
  그러니 우리 불교를 믿는 불자들은 항상 그 마음이 하찮은 때가 없는 순금과 같고 또 공부하는 우리 수좌도 역시 마음이 순금과 같이 되어야 가치가 있는 법기法器가 된다. 그래서 현세에 항상 수행을 해서 삼매를 닦아 나가면 열 가지 이익을 얻는다.

  첫째는 마땅히 시방제불보살의 호념護念하는 바가 된다. 항상 선정을 닦고 수행을 하여 삼매 중에서 내 마음을 단련하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호념을 입는다.

  둘째는 모든 마구니와 악귀의 침노를 입지 아니하고, 또 내가 악귀와 마구니의 공포증을 가지지 않는다. 자연히 마음을 맑게 쓰고 바르게 쓰고 깨끗하게 쓰는데 악마가 거기에 붙을 수가 없는 것이다.

  셋째는 96종의 외도와 귀신에게 미혹당하거나 요란함을 받지 않는다.

  넷째는 정법을 비방해서 하찮은 업장을 받을 일이 있더라도 그 업장이 점점 가늘어지고 없어진다. 업장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마는, 내가 수행을 하면 나를 해롭게 할 업장이 가늘어지고 없어지는 것이다.

  다섯째는 일체 의혹과 모든 악각惡覺의 관이 없어진다. 여우가 의심이 많아서 의심 많은 사람을 호의狐疑라고 하는데, 여우가 시냇물에 얼음이 얼어서 건너가기도 괜찮을 것이지마는 얼음 바닥에 귀를 갖다 대어보고 물소리가 얼음 믿에서 졸졸 나면 빠져 죽는다고 의심해서 건너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일체의 하찮은 의심이 다 없어지고 모든 악하게 관하는 것을 없애준다. 관觀이라고 하는 것은 심관心觀으로서 자기의 생각이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생각해내는 것이라든지 보는 것이 바르지 못한데, 이런 것이 다 없어진다.

  여섯째는 모든 여래의 경계가 난타난다. 여래의 경계, 부처님의 경계가 나타나려고 하면 자기가 수행을 해서 하찮은 마음이 뚝 떨어져야 여래의 경계가 나타나지, 하찮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경계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공부하는 사람은 간단이 생기지 않게 물 흘러가듯이 흘러가야 되고 또 좋은 일하는 사람도 좋은 생각만 가지고 있어야지 거기에 하찮은 생각을 넣어 놓으면 안 된다.

  일곱째는 멀리 근심하고 뉘우치는 것을 다 여의고 생사고 중에라도 용맹스러워져서 겁냄이 없다. 우리가 나면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 가운데 사는데 그것을 겁내지 말고 용맨정진 해야 된다. 부처님과 보살도 역시 우리와 같이 박지범부薄地凡夫인데 그이네가 공부를 해서부처님도 되고 보살도 되었는데 나도 하면 된다는 대 용맹심을 내어야 한다.
  피기장부아역이彼其丈夫我亦而라 저이도 장부요 나도 또한 장부라는 용맹한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해야 된다. 무장한 군인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듯이 그렇게 해야 도道를 성취하는 것이다.
 
  아성환공여래합我性還共如來合 합처비타비자기合處非他非自己라 내 성품이 여래와 합해서 합한 곳에는 나도 아니고 타도 아니다. 일을 하는데 해볼까 말까 하고 의심하지 말고 내 이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에 합해지면 딱 결정을 해서 그대로 의심하지 말고 밀고 앞으로 전진해야 된다.
 
  내 마음이 부처님과 같은 마음으로서 망상없는 마음, 그른 마음이 없는 마음, 어둡지 않는 마음, 착한 마음, 거기서 나온 내 마음이니 이것으로써 내가 앞으로 전진하면 시방 제불이 나를 옹호해 주고 호념護念해 줄 것이다. 하고 은산철벽銀山鐵壁같이 믿어야 된다. 그렇지 않고 무엇을 하더라도 이것이 좋을 것인가 하찮을 것인가 의심을
해서는 안 된다.
 
  여덟째는 그 마음이 부드럽고 화하며 교만한 것을 버려서 다른 사람들을 수고를 끼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든지 집안이 화해야 되고 며느리하고 시어머니하고도 화해야 되고 화하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이 다 된다. 찰떡이나 송편이나 떡을 쩌 가지고 따끈따끈할 때 두드려야 화합이 되지 서늘하게 식으면 화합이 안 된다. 그러니 사람의 마음은 부드럽고 화하고
착하고 순한 데에서 일이 된다. 그러니 집안이 화해야 되지 화하지 않으면 그 집안이 망한다.
 
  큰 나무를 여러 사람이 끌어내는데 앞에서 선소리 하는 사람이 "줄 대목이 한장수漢將帥야 당겨 주소 영차" 이렇게 한 번 소리치는 데 그만 큰 나무가 왈칵 당겨진다. 여러 사람이 붙어서 이 사람은 이 사람대로 당기고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당기면 아무리 해야 당겨지지 않고, 한데 힘을 모아서 당겨야 되듯이 집안에 식구가 다섯이든 열이든 일심이 되어 가지고 전진해야 된다. 그래서 부드럽고 화하며 교만심을 버려야 된다.
 
  내가 돈이 있다든지 세력이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해서 남을 업신여긴다든지 교만심이 있으면 안 된다. 나락도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백로가 지나도 나락이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그 나락은 알이 들지 않은 것이다. 사람도 재물이 있고 귀하게 될수록 하심下心을 해야지 아만심이 있으면 안 된다. 내가 아만심이 없어야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히지 않고 착한 사람이라 해서 나를 도와준다.
 
  아홉째는 비록 선정禪定을 얻지 못하더라도 일체경계에서 모든 번뇌심煩惱心을 감하고 없애서 세간의 하찮은 일을 마음에 즐겁게 여기지 않는다. 남이 그른 짓을 해서 돈을 벌면 "아무개가 그른 짓해서 돈을 버니 나도 착한 마음 가지고는 돈 못 번다"해서 공연히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하찮은 마음을 먹게 된다.
 
  배를 타고 동으로 동으로 가기만 하면 떠난 데 도착하듯이 착한 마음을 먹다가도 하찮은 마음을 써 가지고 돈을 벌어 놓으면 그 돈이 나갈 때 사람 상傷하고 집안 망치고 나간다.
 
  열째는 삼매三昧를 얻으면 밖으로 모든 인연因緣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일체 음성에 동動함이 없다. 내가 늘 얘기하지마는 길가 숲 속에서 꿩이 푸드득 하면 깜짝 놀라는 데 왜 놀라느냐하면 죽은 마음, 흐트러진 마음을 가지고 오니까 놀라는 것이고 푸드득할 때 저 것이 꿩이구나 그렇게 알아버리면 겁낼 것 없다.
 
  예전에 순경이 권총과 칼을 가지고 촌에 가서 자는 데 도둑놈이 그 순경을 죽이려고 문을 열고 문 앞에서 칼을 들고 있는 데 이 순경은 권총이 곁에 있지마는 그것을 쥐면 저 놈이 와서 먼저 찌를 것이기 때문에 곁에 권총을 두고도 사용을 못하는데 어떻게 방편을 썼는고 하니 "네가 칼을 들고 혼자 들어와도 나를 죽일 것인 데 혼자 오지 않고 왜 뒤에 사람을 데리고 왔느냐", 이러니까 그 도둑놈이 자기는 사람을 데리고 오지도 않았는데 누가 왔는가 하고 뒤로 돌아볼 때 그만 권총으로 그 놈을 쏘아 쓰러뜨리고 자기는 살았다. 이와 같이 급할 때 정신을 차려야 사중갱생死中更生이니 죽는 경우에 이르러서 다시 사는 수가 있다. 그러니까 어려울 때 정신이 통일되어야 한다.
 
  다만 이낱 한 점 무명의 불이
  인간의 대장부를 단련해 낸다네
  只箇一點無明焰
  燃出人間大丈夫
 
                         
  무명無明 불이라는 것이 흉악한 불인 데 그 불이 하찮지마는 그 불이 들어서 대장부를 단련해 낸다. 우리 수좌首座들도 공부를 잘 하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 등줄기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삼백육십 골절이 아프지마는 아픈 거기서 출격대장부가 나오고 부처와 조사가 나온다.
  무명의 불이 나쁜 것이지마는 하찮은 놈이 좋은 것을 내는 것이다.

  할 한 번 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