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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0-04 23:10
說寶和尙
 글쓴이 : 돌부처
조회 : 881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이르시기를


  영축산이 깊으니 구름 그림자가 서늘하고
  낙동강이 너르니 물빛이 푸르구나!
  靈鷲山深雲影冷
  洛東江濶水光靑

  예전에 보검寶劍 다루는 사람이 보검을 두 자루 만들어서 두 사람에게 한 자루씩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본래 무장武將이라서 그 보검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아가 공을 세워 나라를 평안케 하였지만 또 한 사람은 그 좋은 보검을 가지고 개 잡고 소 잡는 데 사용하고 있다. 짐승 잡는 데는 보통 칼로 해도 될 것인데 근본적으로 좋은 칼인 보검을 사람에 따라 잘 못 쓰니 같은 보검이지만 이용을 잘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무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보배인데 이 보물을 참으로 잘 써야 할 텐데 보검으로 소 잡고 개 잡듯이 잘못 쓰다가 땅 밑으로 들어간다.

  모든 곳의 문들은 앞에서 잡아당겨 열어서 뒤로 젖히고 들어가게 되었는데 불국사 대웅전의 문은 안으로 밀고 들어가서 안에서 닫게 되어 있다. 이것은 불교를 믿기 시작했거든 물러가지 말라는 뜻이다. 불교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사농공상士農工商을 통해서 내 가정이나 사회국가 세계인류를 위해서 좋은 일을 시작했으면 앞으로 전진만하지 뒤로 물러가지 말라는 뜻이다. 한번 좋은 일을 내가 해야 한다고 입지立志를 세우고 물러서지 않는다는 불퇴전不退轉이란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이 좋은 일이다.
  여섯 가지 바라밀波羅蜜이 있다.

  첫째 보시布施이니 남을 물질로써 구제하는 것이며, 둘째 지계持戒이니 계행을 청정히 갖는 것이니 나쁜 짓을 경계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살라고 하는 윤리관이며, 셋째는 인욕이니 욕됨을 참는 것으로 사농공상의 모든 세계에 괴로움을 참는 것이다. 이 사바세계는 고와 낙이 상반되어 좀 괴롭더라도 무던하게 참는 것이 진리에 이를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넷째 정진은 참선하고 수행하는 것이며 선정禪定을 닦아 지혜가 나는 이 여섯 가지를 육바라밀六波羅蜜이라 한다. 이 육바라밀 가운데 정진에 대해서는 가위를 그려 놓았다. 왜냐하면 옷을 만들려고 가위로 베를 재단하는데 치수만큼 끊어질 때까지 중도에서 놓지 않으며 물러나지 않고 자꾸 앞으로 전진만 하면서 목적을 달하기 때문에 정진을 가위로 표시했다. 앞으로 전진만 하지 뒤로 물러가지 말라고 발가락에 끼워 신게 만들어 놓은 일본 신발이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 뜻이다.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상좌인 사명대사泗冥大師를 시켜서 승군僧軍을 만들게 하고 일국의 장수가 되어 큰 공을 세우게 하였으며 나이가 80인데도 진중陣中에 직접 나와서 왜적이 점령한 평양을 탈환하기도 했다. 서울을 버리고 의주義州로 파천한 선조대왕宣祖大王이 조정의 중신들을 불러 놓고 국가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의견을 물었을 때 한음漢陰 오성鰲城 서애西厓 등 명재상들의 말보다 사명대사의 의견이 특출했다. 선조대왕이 말하기를 “고기 먹고 술 먹는 경들의 창자에서 나온 말보다 산중에서 나물이나 죽순 먹은 거기서 나온 말이 깨끗하고 특수하다.”고 했다. 사명대사의 정신이 탁월했던 것이다.

  서산대사가 어린 사명을 교육시키고 길러 낼 때 글이 있다.


  외짝 사문沙門의 눈이여
  광명이 팔방에 빛나다
  늠름하기는 칼 쥔 왕
  마음을 비우기는 밝은 거울
  구름 밖에 용을 낚아채고
  허공중에 봉새를 두들겨 잡네
  어디든지 살활이 자재하니
  천지 또한 한낱 티끌일러라.

  一隻沙門眼
  光明照八垓 
  卓如王秉劍 
  虛若明鏡臺
  雲外拏龍去 
  空中打鳳來 
  通方能殺活
  天地亦塵埃

  ‘늠름하기는 임금이 칼을 잡고 있는 것과 같이 하라’ 한 것은 백성의 생명을 맡아 가지고 있는 임금이 그냥 가만히 있어도 위풍이 늠름한데 칼까지 잡고 나서면 그 밑에 아무도 감히 말을 할 수 없는 위엄이 서린다는 말이다. 마음을 비우기를 밝은 거울을 걸어 놓은 것과 같이 하라고 한 것은 거울에 때가 끼어 있으면 거울 자체는 밝은 것이지만 무엇을 비추면 다 나타나지 않듯이 우리의 마음자리가 본래 맑고 밝은 것이지만 근본무명根本無明인 탐진치貪嗔痴 때문에 밝음이 없는 자리가 되어 말과 행동이 컴컴해서 밝은 거울에 때가 낀 것 같이 됐다는 것이다. 구름 밖으로 용이 날아가더라도 네가 용기를 내서, 용의 목을 움켜쥐고 끌고 가도록 하고 허공에 날개를 한번 탁 치면 몇 만 리를 날아가는 봉새라도 큰 막대기로 치고 올 수 있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 정신이 살아 있어야 남의 정신도 살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서산대사가 사명대사의 산 정신을 길러 준 데서 잘 보여 주고 있다. 왜적이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서 스님들을 묶고 때리고 행패를 부리면서 적장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장삼 입은 맨주먹뿐인  사명대사한테 물었다.

  “너희 나라 보배가 무엇이냐?”

  “우리나라 보배는 일본에 있다.”

  “너희 나라 보배가 일본에 있을 턱이 있느냐?”

  “너의 머리가 우리나라 보배다.”

  “내 머리가 어찌 너희 나라 보배냐?”

  “너의 머리만 베어 오면 천금千金의 돈과 만호후萬戶侯의 벼슬을 준다고 했으니 너희 머리가 과연 보배가 아니고 무엇이냐.”
  기치창검旗幟槍劍이 삼엄森嚴하고 겨누어 쏘기만 하면 사람이 죽는 조총을 지닌 왜적의 총 사령관에게 그런 말을 거침없이 한다는 것은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위엄이 늠름한 적진의 아장亞將들이 칼을 들어 사명대사를 죽이려 하니 적장은    「절대 그러지 말라. 그런 말하는 사람을 너희가 여기서 죽이면 큰 일 난다.」했다.

  그 때부터 사명대사가 설보화상說寶和尙 이라 불리었다 한다. 그렇게 당당하게 대답했던 사명대사는 어릴 때부터 정신을 단련해서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정신이 살아야 한다. 우리가 일을 할 때 남에게 혹은 뒤로 미룰 것이 아니라 내가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한 국가로 빛내야겠다는 영원한 국가관 조국관만 가슴에 깊이 품고 지금부터라도 이웃에 헌신하는 보살의 행원行願을 실천하면 자연히 동지가 생기는 것이다.
  몸의 이는 크기가 참 깨알만하다. 옷에 붙어 있는 것을 잡아내려고 하면 죽기는 싫고 급해서 떼굴떼굴 구른다. 이런 놈을 손톱으로 탁 터지게 하면 피가 나는 가치 없는 미물이라도 이놈이 장사의 엉덩이에 붙어 가지고 물고 차고 하면 장사도 무엇이 이렇게 하는가 싶어서 엉덩이를 덜석거린다. 이와 같이 사람이 정신을 독특하게 가지면 어떠한 난관이라도 돌파할 수 있다. 우리는 정신을 단련해서 부처님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처님은 자꾸 닦고 단련해서 탐진치 삼독과 팔만 사천 가지 번뇌가 뚝 떨어질 마음속의 때가 없는 그 곳에서 팔만대장경 전부를 토해낸 것이다.
 그러므로 승속을 막론하고 구렁이나 말 소 개가 지나갈 때 심경心經 일편이라도 경 읽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망상 번뇌를 버리고 부처님 생각으로 천진난만한 마음으로 경을 읽으면 그 축생들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오래 살려고 해도 백 년을 못 산다. 지금은 평균 십 년 쯤은 더 수명이 늘어났다고 한다. 육십을 살면 인생의 일도一度가 지나가는 것이다. 이십오 세면 삼십 오년, 삼십 세면 삼십 년만 지나면 육십이 되는데 삼십 년이라 해봐야 무엇을 해보려면 시간이 모자란다. 시간이 없으니 노는 여가 없이 부지런히 일을 해서 사회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무엇이든 하나의 집념을 가지고 성공해 놓아야 한다.
  거지가 구걸하러 가서 “밥 좀 주소.”하니 밥 줄 사람이 “요량한다.”하고 대답한다. 한참 지나도 기척이 없어 “밥 준다고 요량한다더니 어찌되었소. ”하고 거지가 다그치자 “내가 언제 너에게 밥 줄려고 요량 했나 안 줄려고 요량을 했다.”고 말했다. 요량한다는 데서 거지가 속았다. 내가 설마 70세나 80세는 안 살겠나 하지만 설마 내가 죽겠나 하는 생각이 사람을 죽인다. 아무래도 이 몸은 죽어 땅에 들어가 썩어 없어질 운명이니 이 몸을 가지고 헛 시간을 보내지 말고 무엇이든지 남을 위해서 수고로운 일을 많이 하고 보살의 행원을 실천해야 한다.

  남자는 아버지를 흉내 낸다고 장가가고 여자는 어머니를 흉내 낸다고 시집간다. 무슨 별 수가 있는 줄 알고 가정을 이루어 좋다고 하지만 가정 때문에 남을 속일 생각이 생기고 욕심이 나서 국법에 저촉되는 줄 알면서도 죄를 짓고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그릇된 일인 줄 알면서도 죄를 범한다.
  사람의 짧은 일생에 좋은 일만 골라 하자도 못다 하는데 욕심이 눈 앞을 가려서 다른 것은 안 보인다. 우리가 부처님 법문을 듣고 수행하는 것은 죽은 정신을 살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불타의 정신에 합일되어 모든 일을 하면 안 될 것이 없다. 마음 가운데 삼독번뇌를 쉬지 못하면 속마음이 복잡하다. 참선을 해서 번뇌 망상을 버리고 본래 지극히 고요한 자리에 들어가는 것은 본원本源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선정禪定에 들어가면 편안해져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온갖 복잡한 번뇌 망상이 싹 가라앉으니 지극히 고요한 데 들어가면 안정되고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한다.
  일에 쫓겨서 몸과 마음이 분주하고 복잡하더라도 마음은 태연하여 한가한 면이 있어야 한다. 지구가 무서우리만큼 빠른 속도로 돌지만 동動하는 가운데 부동不動하는 이치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흔들리지 않고 사람도 가만히 있다. 우리 몸의 피가 발바닥 밑의 용천혈湧泉穴부터 이마 위의 백회혈百會穴을 계속 복잡하게 빨리 돌지만 동하는 가운데 부동함으로 피가 동하는지 모르지만 주사침을 찌르면 금방 코에 약 냄새가 나는 것은 도는 증거이다. 여러분은 정신을 단련하고 단련하여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은 태연 부동하여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고 이렇게 함으로써 불타의 정신에 계합하는 것이다.
  세속에서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서 죽겠다고 하는 것이 물질 아니면 사람으로 인해서 걱정들을 하는데 부모 태중에서 나올 때 마누라를 안고 나왔나 가장을 업고 나왔나 빈 몸 빈손으로 나왔는데 한 생각 비우고 시집 장가가지 않은 요량하면 맘이 편하다.
  내가 언젠가 밀양 무봉사舞鳳寺에 있을 때 일이다. 어떤 젊은 청년이 빚을 내서 시계를 하나 사서 차고는 기분이 좋아서 야단이다. 그 당시만 해도 시계가 흔할 때가 아니다. 시계를 자랑도 하고 하다가 며칠 뒤에 그만 시계를 잃어버리고는 당장 오줌이 노랗고 밥맛이 떨어져서 얼굴이 오이꽃처럼 핼쑥해졌다. 그래서 그 젊은이를 보고 “자네가 부모님 태중에서 시계를 가져왔나,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 인생 아닌가.”하면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옛날에 경주 사람으로 정만서鄭萬瑞라는 이가 있었는데 어느 때 서울 가다가 노자가 떨어져서 한 이틀 굶으니 눈이 쑥 들어갔다. 어느 주막에 들어가서 소 낭신囊腎을 삶아서 달아 놓은 것을 보고는 그걸 썰어 달래서 술안주 삼아 배불리 잘 먹었다. 술 먹으려 손님들이 자꾸 들어오는데 정만서는 돈이 있어야 치르고 나가지 궁둥이를 붙이고 나갈 생각을 않는다. 주모가 와서 “여보시오 다른 손님들도 들어와서 술 마시게 자리를 비켜주고 회계를 대십시오.” 정만서의 말이 “암소 잡은 요량하소.”하는 것이다. 황소를 잡아야 낭신이 있지 암소를 잡으면 낭신이 없는 것이 정한 이치가 아닌가. 주모하고 자꾸 승강이를 하는 것을 뒷방에 누워 있던 가장이 가만히 들어보니 소 낭신을 먹고는 암소 잡은 요량하라 한다.
  세상에 술장사 30년에 저런 놈 처음 보겠구나 하며 뒷방에서 나오니 인사나 나누잔다. 그래서 알고 보니 천하 잡 놈으로 유명한 정만서란다. 고기 값은 놔두고 소리나 한 번 해보라 했다. 만서 정선달이 온갖 장기자랑을 다 해가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니 가고 오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주막의 술이 동이 났다.
  시계를 잃어버린 젊은이가 정만서 이야기를 듣고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 가슴에 걸려 있던 그 무엇이 수루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 뒤에 와서 말하기를 “스님의 말씀 가운데 태어날 때 빈 몸 빈손으로 온 이야기나 죽을 때 빈 몸 빈손으로 가는 이야기는 속이 시원하지 않더니 정만서의 암소 잡은 요량하라는 말에 한 생각 막혔던 것이 쑥 내려갔습니다.”
  여러분도 사람과 물질에 걸려서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면 정만서의 암소 잡은 요량하라는 말을 생각하면 한 생각 막혔던 것이 풀린다. 한 생각 비우고 생생한 산 정신으로 일하면 절후絶後에 갱생更生이라 끊어진 곳에서 다시 사는 수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아 연극 한바탕 멋지게 해야 한다. 그까짓 거 근심걱정은 냄새나고 죽은 마음이다. 앞으로는 산 정신으로 불타의 정신에 합치해서 살아가길 바란다.

  抵死要行蕓水客 
  剛然求悟本來心 
  爲蛇畵足勞筋骨 
  辜負靑山綠水深 

  한사코 수행하는 운수객이여
  강연히 본래마음 깨닫기를 구하네
  없는 뱀발 그리자니 피곤만 더할 뿐
  청산녹수 깊음마저 저버리네


할 일할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