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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1-02 08:02
뜰 앞의 잣나무
 글쓴이 : 돌부처
조회 : 1,489  
법좌에 올라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고 이르시기를

  종사宗師의 법문은 종사가 일보 이보 삼사오보로 걸어서 법상에 올라앉은 뒤 전후좌우로 대중을 한 번 둘러보고 눈을 한번 끔적해 보인 여기에 가장 진수의 법문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 소식을 알아야지 입을 열어서 횡설수설하며 팔만장경을 다 설하더라도 이 낱도리에는 하등의 관계가 없으며 또 그렇다고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昨一雨 今日風이라 어제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바람이 분다. 어제는 하늘 가득히 구름이 덮여 있어서 해와 달이 있어도 上明下暗이라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둡더니 오늘은 어디서 신선한 바람이 이리저리 불어오니 그 많던 구름이 다 없어지고 밝은 해가 온 우주를 골고루 비춘다.
  우리가 찾으려 하는 이 심성心性 자리는 백천일월보다도 더 밝은 자리이다. 동자 때에는 아무런 나쁜 생각이 없었는데 열다섯 살로부터 스무 살이 되고 스무 살 이상이 되어 처녀는 시집가고 총각은 장가를 가서 가정을 이룬 뒤 사업을 하느라고 복잡한 생활에 쫓기다 보면 자연히 무명無明의 구름이 일어나서 밝은 마음해와 마음달은 그만 어두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법문을 듣고 수행하는 것은 내 마음을 맑히고 밝혀서 본래 묘명妙明자리를 찾아서 잘 살아 보자는 것이다.

  또 이 맑은 마음 밝은 마음으로 세계 인류의 평화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악한 마음을 지닌 모든 중생들을 제도해야 된다.
  산은 은은하고 물은 잔잔히 흘러 바다로 가고 정원의 꽃은 활짝 피어 웃고 있고 새는 가지 위에서 노래 부르니 참으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도리를 설법하고 있다. 꽃은 피고 물은 흐르고 산은 높이 솟아 있고…… 이 모두가 법문 아닌 것이 없다.

  이조 중엽에 허주虛舟라는 덕망이 높은 스님이 계셨다. 평소에 승속에서 도덕이 높은 선지식으로 받들었다. 하루는 승속 간에 유명 인사들이 많이 모여 설법을 들으려고 스님께 법문을 청하였다. 선지식 스님께서 무슨 별 소리나 할 것인가 하고 귀를 기울이고 눈으로 그이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굼벵이가 매미가 돼요.”라는 간단한 말 한 마디만 하더니 법상에서 내려 왔다. 그렇지만 거기에 깊은 뜻의 선지식의 법문이 들어 있다.
  부처님께서 설법하려고 사자좌상에 올라 묵묵히 앉아 있는데 문수보살이 백퇴白槌를 딱딱딱 치고는 “諦觀法王法하라. 法王法如是니라. 자세히 법왕을 보라. 법왕의 법이 이와 같느니라.”라고 말하자 부처님은 설법도 하지 않고 내려 오셨다. 부처님은 말 없는 가운데 설법을 했고 문수보살은 손으로 백퇴를 쳐서 소리를 내고 말로써 설법을 하였다. 오늘 나의 법문도 역시 如是說이라 이와 같이 설한다. 如是에도 속한 것이 아니며 또한 속하지 아니한 것도 아니다.

  雲收靈鷲에 千尋碧이요
  水到洛東에 萬里深이라
  구름이 영축산에 꽉 끼었다가 걷히니 일천길이나 푸르르다.
  영축산은 구름이 끼어도 좋고 구름이 없어도 좋고 달이 있어도 좋고 달이 없어도 좋고 해가 떠도 좋고 해가 져도 좋고 눈이 와도 좋고 눈이 안 와도 좋고 …… 전부 좋은데 구름이 걷히니 일천길이나 푸르다. 물이 낙동강에 잔잔히 흘러서 동해 바다에 들어가니 만리나 깊었더니라. 이것으로 오늘 법문은 마쳤다. 문수보살의 말과 부처님의 무언으로 설법하신 거기에 비하여 오늘 법문은 길다.

  오늘 법문을 들으려고 부산 서울 등지에서 많은 신도들이 왔는데 부산에 사는 김보광金普光이란 처사는 세속에서 불교를 아주 독실하게 믿고 있다. 전에 김 처사 집에 공양청정을 받아서 한 번 간 일이 있었는데 마침 그 때에 연세가 연만하신 강진사람으로 도원道源이라고 하는 스님이 《법화경法華經》을 사경寫經하고 있었다. 이 《법화경》은 중국 석문달釋聞達 스님이 경의 구절마다 주해註解를 달아 놓은 것으로서 법화경 주해서가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책이었다. 도원스님이 20년간 법화경을 독송하다가 중국에서 온 그 책을 얻었다.  보광 처사가 그 책을 얻을 수가 없어서 도원스님에게 모든 수용을 다 해 드리며 이 법화경을 사경하도록 해서 한 권 가졌으니 그 신심이 얼마나 좋은가. 내가 김 처사에게 우리나라에는 없는 책이니 인쇄해서 법 보시 하도록 오년 동안 권한 바 있다. 범어사 관조觀照 강백講伯이 현토懸吐 교정校正 등 출판하는 데 많은 힘써서 이번에 그 책을 만들어 여러 권 가져 왔는데 자기의 환갑 기념으로 그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의 권선하는 말을 듣고는 자식 열 하나를 키우고 사업을 하면서 한 몫에 큰돈을 낼 수가 없어서 처음에는 50만원이면 된다고 해서 5년 동안 한 푼 두 푼 모았으나 모두 70만원이 들어 빚도 좀 내고 해서 김 처사가 이 어려운 일을 해냈으니 정말 잘 한 일이다. 여러분들도 지금부터 돈을 모아서 환갑이 되면 술과 밥을 차리고 돼지 잡고 떡 해서 잔치를 벌여 먹일 생각을 말고 무슨 경책이든지 법보시하는 것이 훨씬 기념이 되고 공덕이 되는 것이다.

  법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니 법보시가 얼마나 좋은지 측정할 수가 없다.

聞而不信尙結佛種之因 
學而未成勝於人天之福 

법문을 듣고 믿지 않더라도 오히려 부처될 종자를 심고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천상 인간의 복 보다 낫다.
  이 법문을 한 번 듣고 마음 밭에 부처님의 정법안장正法眼藏 골수법문을 한 번 심어 놓으면 무슨 소리인지 몰라도 금강쇳덩어리를 머금은 것과 같아서 속에 있지를 못하고 언젠가는 밖으로 나온다. 아주 작은 솔 씨가 땅에 떨어져 2백년 3백년만 지나면 큰 대들보가 되는 것과 같다.

  참선은 도이며 도는 진리이다. 진리는 우리 인생의 자기 생명을 찾는 일이다. 여러분의 몸을 편하게 하고 목숨을 세우는 안심입명처가 어디인가.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삶의 문제를 한번 생각해보라. 잘 입고 잘 먹고 지위가 높은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우리 인생이 사는지 사는 목적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일을 합네 하고 바쁘다고 하지만 죽으면 그만이지 무슨 일이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살아도 잘 사는지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을 해서 정신 수련을 쌓으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마음 가운데 생멸生滅의 구름이 끼어 있으면 어두운 암흑천지가 되어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마음을 닦아 때가 없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모든 일에 지혜가 있어 잘 산다. 과일도 덜 익은 것은 가치가 없듯이 도를 닦는 것도 인격을 완성시켜 완전한 인격자가 되면 관찰력과 판단력이 빠르고 기억력이 좋아지고 비뚤어진 마음이 올바른 마음으로 돌아서고 몸에 있던 병이 없어지고 맑은 지혜가 생겨서 모든 가정일 사회일 국가 일을 잘 해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집에 돌아가서 시간 나는 대로 내 마음 가운데 구름 끼듯이 어두운 것이 있는가, 때 낌이 있는가를 항상 살펴보면 여러분의 가정에 화기가 넘쳐서 가정이 정화되고 사회가 정화죄고 세계 인류의 평화가 이룩된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불교를 믿는 것이다. 불교를 믿어서 어떻게 하든 일상생활에 생활화하여 쓰도록 해야 된다.
  경을 매일 읽고 법문을 매일 들어도 書自書 我自我라 글은 글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입 아프게 경을 읽을 게 뭐 있으며 다리 아픈데 이런 데 와서 법문을 들을 것이 뭐 있겠는가. 약방문을 내었으면 약을 지어 먹어야 병이 낫지 처방을 내어 놓고 십년 이십 년을 책상 속에 처넣어 두고만 있는다면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참선을 하는데 화두話頭를 들고 정신을 집중 시킨다. “어떤 것이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적실한 뜻입니까?”하고 물으니 “뜰 앞의 잣나무니라.”“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마른 똥막대기乾屎厥이니라.”이러한 등의 공안公案들이 있는데 이것에 의문을 일으키라고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진리적으로 격외格外로 일러 준 것인데 바로 알아들으면 되는 것을 모르니 잣나무나 똥막대기가 공안이나 화두가 된다. 바로 우리가 ‘이 뭣고?’하는 일어지하一言之下에 단박 생사를 잊어버리고 활연히 알면 그 뿐인 것이다. 활연대오豁然大悟를 했다 하더라도 보임保任 공부를 하는 법이 있다. 공부를 십년 이십 년 지리하게 끌 것이 아니라 바로 들어가야 한다. 활은 배우는데 처음에는 화살이 자꾸 땅에 떨어지지만 오래 쏘면 나무판에 맞고 나중에는 과녁에 딱 맞듯이 久久하면 必有入處라 오래오래 둔공鈍功을 들이면 반드시 뚫어내는 수가 있으니 바로 들어가야 한다. 처음 공부할 때는 잠이 막 퍼부어서 혼침昏沈에 빠지지 않으면 산란심散亂心이 나서 이 생각 저 생각에 끌려 다닌다. 처음 공부할 때는 졸음이 와도 안 자려고 하지만 이 자리를 알아 놓으면 자도 자는 것이 아니다.

  머리를 수그리고 끄덕끄덕 조니
  잠자는 일 외엔 딴 게 없네
  딴 일 없이 그저 끄덕끄덕 졸 뿐

  低頭常睡眠睡外更無事
  睡外更無事低頭常睡眠

  혼침 산란에 빠져서 졸면서도 이것이 도다 하면 안 된다.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기를 가을 물에 달이 비침과 같이 그렇게 맑게 하라. 너무 급히 하려고 해도 안 되고 너무 믿어도 안 되고 중도中道를 취해라. 그래서 힘을 넣어 하지마라. 어서 하려고 하면 육단심肉團心이 동해서 열기가 머리로 올라가 상기上氣가 되면 머리와 가슴이 아파서 공부를 못하게 되니 거문고 줄 고르듯 해야 한다. 병든 이가 의사가 와서 어서 낫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듯이 하여라. 어린이는 엄마가 변소에 가면 냄새가 나도 따라 간다. 냄새를 맡으며 가다리고 있다가 엄마가 나오면 치마꼬리를 거머쥐고 따라다니며 한시라도 안 놓듯이 그와 같이 하라. 처음 공부를 하면 화두를 들면 있고 그렇지 않으면 없어지고 하던 것이 오래 승강이를 해서 장구성長久性을 가지고 밀고 나가면 不學而自擧라 안 들으려 해도 자연히 들린다. 행주좌와 어묵동정 희로애락에 역력히 들리고 일할 때에도 들리고 손님과 말할 때에도 들려서 말은 말대로 하는 화두는 역력히 목전에 들린다. 행주좌와가 이러하고 오매寤寐에도 이러해서 꿈에도 화두를 들었는데 깨어보면 자고 공부를 했는지 안 자고 했는지 이런 지경에 들어간다.

  밤이 팔구월이 되면 저절로 탁 벌어져서 알밤이 바람이 불어도 툭 떨어지고 아이가 흔들어도 툭 떨어지듯이 그런 시절인연이 도래한다. 공부는 하지 않고 속히 깨달으려고 한다. 속히 깨달으려고 하는 것도 망상이고 공부가 어서 안 되나 하는 것도 망상이요 일체 좋고 나쁜 생각에 틈을 두지 말아라. 제가 불자들은 살림살이 하면서 틈나는 대로 하고 우리 수행 전문가인 스님 네들은 생명을 걸고 물 샐 틈 없이 가나오나 항상 그 가운데서 놀아야 한다.
  수행을 하려면 발심이 돼야 되는데 병이 선지식이다. 중국 총림中國叢林에는 수좌首座가 공부하다가 병이 나면 열반당涅槃堂으로 가서 치료를 받는다. 거기서 병이 치료되면 다시 선방禪房으로 들어가고 낫지 않으면 화장장으로 가고 만다. 열반당에 들어가면 수좌들은 재발심再發心이 된다. 여러분들도 설사 발심을 했다 하더라도 다시 발심을 해서 목숨을 걸고 한번 해볼 일이다.
  손을 뒤집어서 무엇을 잡으려 하면 무엇이든 잡혀지지가 않듯이 인생관을 살짝 한번 뒤집으면 멋있게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우주가 들어가도 어디에 있는지 모를 지경으로 마음을 넓게 먹고 사바세계를 무대삼아 연극 한바탕 잘해야 한다.
  서울 사는 어느 처사가 몇 해 전에 일본에 간 기회에 일본 선방을 구경하려고 선방 안으로 불쑥 들어가니 밀어내기에 그 처사가 “내 집에 내가 들어가는데 누가 못 들어가게 하느냐. 낯선 사람이 있거든 나오라고 해라.”고 했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소리에 그 일본 사람은 입승入繩스님을 불렀다. 입승스님이 왜 그러느냐고 묻기에 처사가 선방 구경 좀 하려고 내 집이라고 말을 했노라고 하니 입승 스님이 씩 웃고는 허락을 하더란다.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 말이 걸작이 아닌가.


  바다밑에 붉은 구름이 이는데
  머리를 남으로 돌리니 해가 솟누나
  大洋海底紫雲起
  回頭南山日草生

할 일할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