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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4-19 20:50
日常三昧
 글쓴이 : 돌부처
조회 : 875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들어 보이고 이르시기를
  정법안장正法眼藏은 말과 글로써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이지만 소분小分의 소식을 통하고자 하면 目擊而道存이라 눈이 마주치는데 도가 있는 것이다. 내가 눈을 끔적하는 여기에 모든 정법正法의 소식을 통해주는 것이다.

  영축산에 구름 개니 천 길이나 푸르르고
  물이 낙동강으로 흐르니 만 길이나 깊었도다
  雲收靈鷲千尋碧 
  水到洛東萬里深 


 이 게송으로써 법문을 다해 마쳤다. 그러나 설법이 아니요 다만 이름이 설법인 것이다.
 입을 열면 그르치고 입을 닫으면 잊어버린다. 그 뿐 아니라 입을 열지도 않고 닫지도 않더라도 팔만 팔천 리나 멀어졌다.

 이만해도 법문을 다해 마쳤지만 너무 간단한 것 같아서 인생관과 세계관에 대해서 조금 말해보겠다.
 인생이 이 몸을 애지중지 하는데 14가지 원소元素가 집합해서 된 것이 사람의 몸이다. 세상의 만물이 모두 값이 있듯이 사람의 몸도 값을 놓을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사탕분이 1원, 유황분이 50전, 염분이 30전, 미소 철분과 모발이 5원 10전 등으로 값을 놓을 수가 있는데 동양에서 화학적으로 이것을 뽑아서 가격을 친다면 52원 70전어치고 서양에서는 98전어치의 값으로 본다.

 우리의 몸과 일상생활에 쓰는 모든 것은 가격으로 칠 수 있지만 이 커다란 우주와 허공은 값을 매길 수가 없다. 부모의 정혈精血로 만든 우리 몸은 가격으로 칠 수 있지만 진아眞我 즉 참된 자기의 신령스런 이 무가보無價寶는 값을 매길 사람이 없다.

 우리 수좌가 공부하는 것도 무가보인 신령한 자리를 발견하려는 것이다. 이 자리를 마음이라 하기도 하고 부처자리라 하기도 하고 한 물건이라 하기도 하지만 성현들이 부득이 해서 한 말이고 이 자리는 근본적으로 말한다면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한 물건도 아닌 것이다.
 그러니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기에 무엇이라고 설파하여주기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이 몸을 자기라고 하지만 자기가 아니다. 구경究竟에 가서 이 자리를 증득證得하면 자기가 아님도 아니지만…….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참된 자기일진대 부모의 태중으로 들어갈 때 어디에 있다가 왔는지 그곳을 모른다. 이 몸을 수용하고 있다가 호흡이 떨어져 죽으면 모든 의식意識이 없어지고 초목이나 돌과 같이 아무 감각을 모르니 그러면 그 주인공은 어디로 가는가, 이 자리가 가는 곳이 있는가. 오는 곳이 있는가, 태어나는 것이 있는가. 죽는 것이 과연 참으로 있는 것인가, 그 사람이 생사거래生死去來를 모를 뿐 아니라 죽는 날도 모른다. 이러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그저 갈팡질팡 오욕락과 주색 속에 헤매다가 그만 죽게 되면 어디로 가는지 그저 아야아야 하며 신음하며 숨이 떨어져 죽는다. 이 몸이 죽으면 냄새나는 송장이 되어 사르면 한줌 재가 되고 관에 넣어 땅에 묵으면 한줌 흙이 되고 마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우리가 애지중지 하는 우리의 몸뚱이인 것이다.

 허망하지 않고 참된 보배가 되는 이 마음자리를 발견하겠다고 수좌나 불교 신도들이 모두 도를 닦는데 이것이 나의 참된 주인공을 찾는 길이다. 석가 부처님도 자기 발견을 하러 설산에 들어가신 것이니 일생으로 천신만고를 다해서 진아를 찾아야 한다.

 승속 간에 자기를 찾는데 오고가며 생각하고 밥 먹고 대소변 볼 때도 생각을 해서 진리를 닦는 것을 일상삼매日常三昧라 하는데 우리가 항상 사농공상士農工商에 종사하면서 그 가운데서 요중공부鬧中工夫를 할 것 같으면 정중공부靜中工夫보다 힘이 더 많이 생기는 법이니 일상생활 중에서 자기를 발견하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세계관世界觀을 말하겠는데 세계가 어찌해서 처음 일어났는가를 다 설명하자면 책이 여러 권 되지만 간단하게 말하겠다. 본래 소소령령昭昭靈靈한 이 자리는 일체 수법數法이 떨어지고 일체 명상名相이 떨어져서 한 물건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자리는 하나가 있으면 둘이 있고 둘이 있으면 셋이 있고 해서 무진수가 있지만 없는 가운데 하나만 일어나면 둘이 있고 셋이 있고…… 백 천수가 거기서 다 난다. 없는 가운데 별別로 나누어 볼 때에 하나와 여섯은 물에 속하는데 물은 북쪽이며 둘과 일곱은 불에 속하는데 목은 동쪽이며 넷과 아홉은 금金에 속하는데 금은 서쪽이며 다섯과 열은 흙에 속하는데 흙은 중앙이다. 이것이 숫자적으로 동서남북과 중앙을 벌려 놓은 것이다. 하나가 생기니 일체 수법이 생기고 동서남북이 본래 없지만 갈라 붙이면 그렇게 된다.

 세계는 풍륜風輪 ․ 금륜金輪 ․ 화륜火輪 ․ 수륜水輪 ․ 토륜土輪 등 오륜 세계로 되어 있다.
사람의 마음 가운데 밝지 못한 무명풍(無明風)이 붙어서 팔만 사천 가지 망상이 일어나고 그 망상으로부터 우리의 몸과 우주가 생겼다.

 무명풍無明風이 붙어서 풍륜세계가 되었다. 이 우주는 대우주이고 우리의 몸도 우주의 구조와 똑같이 생긴 소우주이다. 오륜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풍륜세계이다. 우리가 숨을 들이 미시고 내 뿜는 이것이 곧 풍륜세계이다. 굳게 집착함으로 인해서 금륜세계를 이룬다. 우리 몸의 골절骨節이 금륜세계이다. 번뇌가 치성함으로 인해서 화륜세계를 이룬다. 우리의 애정은 물에 속하기 때문에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동생이 형에게 아무리 잘하더라도 부모의 마음이나 형의마음을 당할 수가 없다. 왜 그런가하면 물이라는 것은 역수逆水하는 것이 아니다. 밑으로 흘러내려가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 비유한다면 피와 진액이 수륜세계이다. 걸림이 없음으로 인해서 걸림이 된다. 걸림이 없어야 되는데 모든 마음이 걸림이 되어 무애無碍의 경지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걸림이 있는 토륜세계를 이룬다. 우리 몸에 비유한다면 힘줄과 살이 토륜세계다.

 오륜세계가 전부 우리 몸에 있다. 우리의 눈은 해와 달인데 왼쪽 눈은 해이고 오른쪽 눈은 달이다. 우리의 핏줄은 강물이라 할 수 있고 위장은 바다이고 풀과 나무는 우리 몸의 머리카락과 털이다. 초목도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어 낙엽이 지듯이 우리의 몸에 털도 나이가 많아지면 검은 머리에 흰 털이 생기고 이렇게 해서 우주의 생성生成하는 원리가 우리 몸에 전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일어나는 것이 근본적으로 마음으로부터 쫓아서 되는 것이니 마음을 잘 쓰면 모든 복도 마음으로 쫓아서 생기고 죄를 지어 벌을 받는 것도 마음으로 쫓아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 정신통일을 잘하면 우리 몸 안에 삼시구충三尸九虫이라는 충도 무아無我의 참된 경지에 들어가면 다 없어진다.

 삼시구충이란 좋고 착한 일은 못하게 방해하고 나쁜 짓은 하도록 유혹하는 좋지 않은 의식충意識虫을 말한다. 이 말은 옛 의학 서적에 있는 말이다.

 수행을 쌓으면 마음이 정직해지고 일상생활의 모든 분야에 몸과 마음이 침착해지고 마음을 닦아 나아가는데 용감성이 난다. 모든 일에 용맹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못 쓴다. 좋은 이상理想이 밝아지고 모든 일에 연구력이 강해지고 용심이 얕지 않고 깊어지고 진실되며 쾌활하고 명랑해진다.

 옥을 캐서 닦을수록 광채가 나듯이 이 마음은 닦으면 닦을수록 빛이 난다. 이 마음의 본래 백천일월百千日月보다 밝은 자리건만 제 스스로 무명풍을 일으켜서 어둡게- 해 놓은 것이니 차차 수련해서 그 무명풍을 쉬고 번뇌의 바람이 자고 지극히 고요한 데 들어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한다.

  달빛은 구름에 어리어 희고
  솔바람은 이슬에 묻혀 차다
  月色和雲白 
  松聲帶露寒 


할 한 번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