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초선의 특징을 뭐라고 하고 있느냐하면,
‘심사희락정尋伺喜樂定’ 이 다섯 가지로 꼽습니다.
심사尋伺라는 것은 노력한다는 뜻이고, 집중력이 생긴다는 뜻이고, 그 다음 희락喜樂이라는 것이 중요한 건데요. 이건 뒤로 가면서도 안 없어집니다. 심사는 제2선정에 가면 없어지지만은 희락은 2선정 3선정 계속됩니다. 더 깊어지는 거예요. 이 희喜라는 것은 즐거울 희 자 기뻐한다는 뜻이고, 락樂은 즐거운 행복이라는 뜻 이예요. 그러니까 정신상태가 순수한 상태가 계속될 그때 우리 의식에 와 닿는 게 그 때 우리 의식내용이 뭐냐? 기쁨을 느낀다는 거예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왜 집중이 돼서 순수한 의식이 되면 기쁨을 느끼는 줄 아세요? 그거는 우리 본성이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열반경涅槃經》이라고 하는 경이 있는데요. 그 경에 보면 열반涅槃이라 하는 것을 뭐라고 정의하고 있는가하면 ‘상락아정常樂我淨’이다. 이렇게 정의를 합니다. 앞에 상락常樂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상常이라는 것은 항상하다 영원하단 소리고, 락樂이라고 하는 소리는 기쁨, 행복 그러니까 붙여서 상락 이라고 하는 소리는 영원한 행복, 항상한 기쁨 뭐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열반이라는 것은 진리 그 자체고 우리 본성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본성이 항상한 기쁨 그 자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본성에 도달해 있을 때 깨달았을 때 뭐라고 말하느냐?
극락세계極樂世界, 극락이라 부처님 세계를 극락이라고 해요. 우리 본성이 이렇게 행복이고 기쁨이기 때문에 우리 의식이 순수해진다는 것은 본성에 깨달음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다는 뜻이고 우리 본성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그 본성을 가까이서 느끼게 되기 때문에 기쁨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순수 집중이 될수록 기쁨은 더 깊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내 자신이 곧 행복이로구나’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생활하는 생활 태도가 달라지게됩니다. 왜냐면 행복을 위해서 남과 다퉈야 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걸 정말 이렇게 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행복을 위해서 다퉈야 될 이유가 없으니까 남한테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양보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또 남을 도와줄 수 있게도 돼요. 마음의 여유가 있으니까요. 남보다 뭐든지 먼저 해서 내 걸로 이렇게 거둬들일라고 이렇게 조급해 있으니까 여유가 없으니까 늘 싸움 상태 있으니까 양보가 안 되고 남을 돕는 일이 안 되죠.
그런데 진정한 행복이란 것은 정말 내 속에 내 자신이다 내 자신에게 있다. 이렇게 확신이 서면 마음이 여유가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비로소 더 진정한 행복 그 자체 더 순수한 더 차원 높은 행복 소위 깨달은 행복 열반의 행복이라고 하는 이 구경의 행복에 대한 믿음도 그러니까 깨달음에 대한 믿음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런 진정한 수행을 통한 힘이 있어야만 불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는 설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체험을 통해서 아! 또 다른 세계가 있다. 별다른 세계 전혀 이런 세계가 있으리라 생각 안 했는데 별다른 세계가 있다. 별다른 행복처가 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 견성이니 해탈이니 하는 그런 말씀에 대해서 믿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겁니다.
이 삼매에 관한 거는요 서양 서구 사상에는 아예 그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서양 사람들 사고체계에는 그쪽에도 저 희랍시대부터 얼마나 다양한 사상들이 있어 왔는데도 그 가운데 선정적 삼매를 통한 수행이라든가 혹은 삼매 세계에 대한 어떤 그 이론들이 전혀 없답니다. 아마 어쩌면 그래서 서양 사람들이 명상센터다 뭐다 구미에 상당이 한창 몰입한다는데 그런데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일찍이 들어보지도 못한 얘기여서 그러다가 이것은 자기가 본인이 노력하면 자기가 실천할 수 있는 거거든요. 체험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것 뭐 상상 옛 전설에 나온 얘기가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한 번 체험을 하게 되면 정말 여기에 빠지게 되고 그래서 오히려 저 미국이나 이런 쪽에 선에 관한 관심이 높다는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자 이 선 체험에 관한 것은 이정도 얘기 하고요.
1) 심사희락정尋伺喜樂定
색계는 초선 2선 3선 4선의 네 가지 세상이 있다. 각각의 세상의 특징은 삼매의 경지에 따라 분류 된다. 즉 심사희락정尋伺喜樂定으로 대표 되는 경지이다.
초선, 심사희락정尋伺喜樂定 모두 있다.
2선, 심사가 탈락되고, 희락정喜樂定만 있다.
3선, 희가 탈락되고, 락정樂定만 있다.
4선, 락이 탈락되고, 정定만 남았다.
심사희락정이란 무엇일까. 심尋은 빠알리어로 ‘위딱까(vitaka)’라 하고 ‘일으킨 생각’을 말한다. 사伺는 빠알리어로 ‘위짜라(vicara)’라 하고 ‘지속적인 고찰’을 말한다. 심과 사는 초선에는 있지만 2선 이상에서는 사라진다. 희喜는 빠알리어로 ‘삐띠(piti)’라 말하고 ‘거친행복’을 말하고 3선에서는 사라진다. 락樂은 빠알리어로 ‘수카(sukha)’라 하는데 ‘잔잔한 행복’을 말하고 4선에서는 사라진다. 정(定)은 빠알리어로 ‘우뻬카(upekkha)’라 말하고 ‘지극히 평온한 상태로서 심리상태가 매우 깊어지는 단계’라 볼 수 있다. 4선에서는 정만 남게 되고 지극히 평온한 상태가 되고 심리상태가 매우 깊어지는 단계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단계에 이르면 행복감까지 사라질 뿐만 아니라 호흡도 끊어진다.
2) 상락아정常樂我淨은 열반에 갖춰진 네 가지 덕(涅槃四德)을 뜻한다.
상常은 항상 머물러 소멸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열반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생멸변화가 없는 덕을 갖추고 있음을 말하며,
락樂은 안락의 뜻으로, 생멸변화가 없는 세계는 생사의 고통을 벗어난 적정무위寂靜無爲의 안락한 덕을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아我는 참 나의 뜻으로, 망령되게 집착하는 나를 벗어난 무애자재한 영지靈知의 덕을 갖추고 있음을 뜻하고,
정淨은 청정의 뜻으로, 번뇌 망상의 더러움을 남김없이 소멸시켜 청정무구한 덕을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