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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8-12 16:25
신령스런 광명 1
 글쓴이 : 돌부처
조회 : 2,908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세 번 구르고 이르시되

  비 개인 뒤 산 빛이 새롭고
  봄이 오니 꽃이 붉다
  달이 차가운 솔가지에 걸리고
  바람은 뜨락 잣나무를 흔드네

  雨過山靑 
  春來花紅 
  帶月寒松 
  搖風庭栢 

  비가 오기 전보다 비가 지나간 뒤의 산 빛이 곱고, 봄이 오니 꽃만 붉은 것이 아니라 만물이 모두 봄빛을 띠어 찬연하다. 화가의 눈에도 산 빛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고, 바다 물빛도 몇 번이나 바뀌다한다. 바람이 잣나무를 흔들고 달이 찬 솔가지에 걸려 있는 풍광을, 여러분들도 다 잘 아는 것이지만, 부처님의 진리 법문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누웠던 주장자를 여러분들에게 보이고 법상을 세 번 쳤는데, 이것이 법문이다. 이 주장자를 보아라. 죽은 송장에게 아무리 보인들 송장이 볼 수 있나, 주장자로 법상을 '탁' 치는 이 소리를 귀로 들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귀로 듣기를 사람소리, 말소리, 물소리, 새 소리 등 온갖 소리를 듣고는, 저 소리가 무슨 소리라고 분간을 할 수 있지만 '탁' 치는 이 소리는 분간할 수 있겠는가. 이 무슨 도리인가? 공부를 해야 알지 그렇지 않고는 수없이 들어도 모른다.
 
  우주 만물이 사람들에게 편리하게 만들어 져 있는데, 푸른 산에는 초록이 있고 꽃이 피고, 새도 울고 온갖 것 물과 돌, 이 모든 것을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데, 그 수용하는 근본 자체는 모른다.

  모든 상대적인 二邊을 떠나서 大自由 大自在를 얻어 穩坐하여 영원히 살 수 있는 진리가  분명히 있건마는, 그런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른다.
 
  우주 만물에 불법이 다 있는데, 어떤가 하면 생활이 불법이요 우리의 모든 행동이 불법이지 불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공기 가운데 전기와 전자는 사람에도 통하고, 나무에도 통하고 돌이나 물에도 통하고 삼라만상 어디에고 통하지 않는 곳이 없듯이, 불법의 진리도 그렇다.

  이렇듯 진리는 보편화한 우리 일상생활 주변이 온통 그대로인 것을, 자기의 지혜가 넓지 못하고 안목이 어둡기 때문에 통찰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시냇물은 모두 바다로 極함을 삼는다. 삼라만상은 허공으로 극함을 삼는데 天森羅地森羅의 모든 만물은 허공으로 極則을 삼는 것이다. 六凡四聖은 부처님으로 극함을 삼는다.

  明眼衲子는 이 주장자로 극함을 삼는다. 宗師가 짚고 다니고 衲子가 들고 다니는 이 주장자로 극함을 삼는다. 그러니 이 주장자가 어찌 극함이 되는가? 만약 어떠한 사람이 이 도리를 얻으면, 나는 그 사람에게 두 손으로 이 주장자를 分付하겠다.

  한가로이 선상에나 기대고 있을 것을
  주장자를 말함은 후학에게 길을 가리키기 위해서다
  不如閑倚禪床畔 
  留與兒孫指路頭 

  예전에 중국의 福州 古靈寺에 神贊禪師라는 분이 있었다.
  처음 출가하여 고향의 大中寺에서 은사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스님은 늘 경전만 보고 있지 참선은 안 한다. 글을 아무리 들여다보고 있어 봐도 그래가지고는 부처님이 靈山會上에서 꽃을 들어 보인 소식과, 그리고 오늘 내가 법상에서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주장자로 법상을 '탁' 하고 친 이 소식은 알 수 없는데, 문자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격식 밖의 것이다.
 
  그래서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善知識 스님을 찾아 은사를 찾아 떠났다. 행각을 하고 다니다가 대선지식이신 百丈和尙을 만나 도를 깨닫고, 本寺에 돌아오니 은사가 물었다.
  “그대는 내 곁을 떠나가서 무엇을 익히고 왔는가?”
  “아무런 일도 익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중과 함께 머물며 일을 돌보고 있었고, 은사는 여전히 예전 그대로 책을 펴놓고 糟粨만 먹고 있었다. 조백이란 말은 깨로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을 말하는 데 문자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기름은 안 먹고 깻묵만 먹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 스님이 문자에만 끄달려서 매일 경만 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은사가 목욕을 하다가 선사에게 등을 밀라 하니, 선사가 등을 밀면서 말하였다.
  “좋은 佛殿인데 부처가 영검치 못하구나.”
  그의 스승이 고개를 돌리니 선사가 또 말하였다.
  “부처는 영검치 못하나 광명은 놓을 줄 아는구나.”
 
  그의 스승이 창가에서 경을 읽는데, 벌이 들어왔다가 창문에 부딪치면서 나가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선사가 게송을 지었다.
   
  문으로 나가려 않고
  봉창을 치니 크게 어리석다
  백 년을 옛 종이를 뚫은들
  어느 날에나 나갈 수 있겠는가

  空門不肯出 
  投窓也大痴 
  百年讚古紙 
  何日出두時 

  글이나 읽어가지고는 생사해탈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의 스승이 목욕할 때 들은 말과 지금 글 읽을 때 하는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마
 이 사람이 벌써 깨달은 사람인가보다, 하고는 읽던 경을 덮어놓고 물었다.
 
  “그대는 행각하다 누구를 만났는가, 내가 아까부터 말을 듣자니 매우 이상하구나.”
  “저는 백장화상에게 쉴 곳을 가르쳐 주심을 받았는데 이제 은사의 덕을 갚으려는 것뿐입니다.”
 
  그의 스승이 대중에게 알려 공양을 차려 잘 대접하고 선사에게 설법을 청하니, 선사가 법상에 올라 백장의 문풍을 드날리고 이어 설법하였다.

  신령스런 광명이 홀로 빛남이여
  영원히 근진(六根六塵)을 초월한 자리여라
  마음 본체가 진상을 드러내어
  무엇엔들 거리끼랴
  참된 성리란 더럽혀지지 않아
  본래부터 뚜렷이 이루어졌네
  다만 허망한 인연만 떨쳐 버리면
  곧 如如한 부처이다

  靈光獨露逈脫根塵 
  體露眞常不拘文子 
  眞性無染本自圓成 
  但離妄緣卽如如佛 
   
  아무 생각도 없는 昭昭靈靈한 그 자리는 홀로 드러나 있다. 六根과 六塵에 무슨 때가 있겠는가. 이 당체가 아무 망상 없는 이 자리를 늘 노출시키고 있으니, 비단 문자에만 걸림 없는 것이 아니라 生死에도 걸림이 없는 것이다.
 
  그 자리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 그 자리에 걸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런 말은 千古에 듣기 힘든 말이다. 삼천여 년 전에 부처님이 말하였고, 모든 조사들이 말한 그 자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당체, 그 자리를 오늘 내가 바로 말해 주는 것이다.
 
  참된 성품이 물듦이 없는 것이 흡사 연꽃에다 똥물을 붓고, 청·황·적·백·흑의 온갖 색깔을 부어도 닿기는 닿지마는 하나도 물들거나 묻지 않는다. 진흙에 박았다가 빼내도 조금도 흙이 묻거나 더렵혀지지 않듯이 우리 참된 성품에는 모든 더러운 것을 묻히려 해도 묻힐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망상을 피우면 피웠지 이 자리는 巍巍落落하여 조금도 어리댈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허망한 인연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님이다.
 
  그의 스승이 이 말에 깨닫고 말하기를
  “늘그막에 이런 지극한 설법을 들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선사가 나중에 고령사에 가서 대중을 교화하기 몇 해만에 임종이 가까워지니 머리를 깎고 목욕을 하고 종을 쳐 대중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소리 없는 三昧를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대들은 조용히 들어라, 모든 생각을 비우고…….”
 
  대중이 모두 선사의 無聲三昧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선사는 엄연히 그리고 아주 조용히 입적하였다. 그 후 본산에 탑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