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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8-26 15:15
前三三 後三三
 글쓴이 : 돌부처
조회 : 2,945  
법좌에 올라 이르시되

  문을 열어 평야를 바라보니
  사월 남풍에 보리는 누렇고
  제비는 쌍쌍이 날아 密語를 전하는데
  산은 높고 물은 푸르러 오만 가지 꽃이 향그럽네
  開門今日看平野
  四月南風大麥黃
  燕子雙雙傳密語
  山高水碧萬花紅

  예전에 어느 선비가 제비들이 강남에서 날아와서 반가운 듯이 지저귀는
  것을 보고 自問自答으로 지은 詩가 있다. 

  제비야 제비야 너 왔느냐 소식이 좋구나
  강남의 풍경이 요즈음은 어떻니
  燕燕來耶消息好
  江南風景近如何

제비의 답이다.

  어젯밤 동풍 어젯밤 비에
  복사꽃이 주인댁 뜰에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昨夜東風昨夜雨
  紅桃花發主人家

  山平等故處處常平, 水平等故相合長流,日月星辰平等故四時常明,
人平等故眼橫鼻直 見色聞聲相同, 眞理平等故古合如一, 萬境平等
故花笑鳥歌, 是法平等故高下長短是非明暗善惡生死都無, 是名阿
褥多羅三邈三菩提, 良久云 向下長言 明日更來.
  산이 평등하기 때문에 어디든지 항상 푸르고 물이 평등하기에 물과
물이 서로 만나면 합하고 길이 흐른다. 해와 달과 별이 평등하기에
네 계절이 언제나 밝고, 사람의 마음이 평등하기에 눈은 가로 열리고
코는 내리 붙어서 빛을 보고 소리를 듣는 것이 모두 다 같은 것이다.

진리가 평등하기 때문에 예와 이제가 한결같다. 예도 없고 이제도
없는 항상 그대로인 것이다. 온갖 경계가 평등하기에, 꽃은 웃고
새는 노래한다. 이 법이 평등하므로 높고 낮음과 깊고 짧음과 옳고
그름과 밝고 어두움과 선과 악과 생과 사가 없는 것이다. 이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 것이다.

한참 있다 이르시기를
  “이후 긴 말은 내일 다시 올지어다.”
  예전에 항주에 無着 文憙禪師(821~900)라는 분이 오대산에
文殊菩薩을 친견하러 갔었다.
  성지인 오대산 금강굴 앞에 앉아 있는데 노인이 소를 몰고
오다가 말을 건넨다.
  “자네는 어떤 사람인 데 무엇하러 이 깊은 산중에 앉아 있는가?”
  “예, 문수 보살을 친견하러 왔습니다.”
  “문수보살을 가히 친견할 수 있을까… 자네 밥 먹었는가?”
  기서부터 법담이 시작이다. 법으로 한 번 집적거려 본 것인데,
무착이 대답한다. 
  “안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안 먹고를 말한 것이 아니라, 법으로써 한 번 이 사람
이 도가 좀 익은 사람인가 싶어서 찔러 본 것인데 '밥 안 먹었다'고
한다. 

  우리 일상생활, 즉 밥 먹고 옷 입고 대 소변 보고 하는 모든 우리
주변에 불교의 진리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있건마는 사람이 모른다.
있다고 해도 모르니 탈이다.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고 깜깜하다.

무착이 '밥을 안 먹었다.'고 하니, '생짜로구나.'하고는 그 노인이
그냥 간다.  그래도 눈치는 빨라서 비록 그 노인이 소를 몰고 가지마는
말하는 태도라든지    얼굴 표정이 범상치 않은 그 무엇이 있음을 보았
던지, 그 노인을 따라간다. 얼마쯤 가니 절이 나타났다.
  노인이
“균제야!” 
  하고 시자를 부르니 시자가 나와서 소를 받아 매었다.
  잠시 후 茶가 나왔는데, 茶椀이 무엇이더냐 하면 금·은·유리·자거·마노·
호박 등 일곱 가지 보배의 하나인 玻瓈로 된 훌륭한 잔이었다.
  차를 마시니 보통 세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酥酪醍醐의 차였다. 몸과
마음이 형언키 어려울 지경으로 아주 상쾌한 향기로운 차였다.
  노인이 물었다.
  “자네 어디서 왔는가?”
  “남방에서 왔습니다.”
  노인이 찻잔을 들고 다시 물었다.
  “남방에도 이런 물건이 있는가?”
  “없습니다.”
  “이런 물건이 없다면 무엇으로 차를 먹는가?”
  그러니 찻잔을 들고 '남방에도 이런 물건이 있는가?' 할 때에 묻는
뜻은 모르고 찻잔을 물은 줄 안다.
  어리석은 개에게 흙덩이를 던지면 흙덩이가 자기를 때렸다고 흙덩이
를 쫓지만 사자한테 흙덩이를 던지면 흙덩이는 어디 갔던지 바로 던
진 사람을 문다.  사자하고 개하고 비교하면 천지 차이이다.
  '남방에도 이런 물건이 있느냐?'하니 없다고 하자, 뜻은 다른 데 있
지만 슬쩍 돌려서 '그러면 찻잔이 없으면 무엇을 가지고 차를 먹느냐?'
하고 물었다.
'남방에도 이런 물건이 있느냐?' 는 그 말에 좋은 뜻이 있지만 모르니
어찌 하겠나?
  여러분들은 좌에 앉기 전에 있는 그 소식을 알아야 한다. 그 낙처가
어디에 떨어진 줄을…….
  무착이 그 절의 방을 둘러보니 벽과 방안의 모든 장식물들이 모두 순금
으로 휘황 찬란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노인이 물었다.
  “남방 불법은 어떻게 주지하는가?”
  “말법 비구가 계율을 지켜 유지합니다.”
  “대중은 얼마나 되는가?”
  “혹 3백 명도 되고 혹 5백 명도 됩니다.”
  그러니, 노인이 묻는 뜻은 딴 데 있건만, 사실 그대로만 말한다. 법을
모르니  혹 3백 명도 되고 혹 5백 명도 된다고 한다.
  무착이 노인에게 묻는다.
  “여기 불법은 어떻게 주지합니까?”
  “凡夫와 聖賢이 함께 살고, 용과 뱀이 혼잡해 있느니라.”
  무착에게는 무슨 말인지 막연한 말 뿐이다.
  또 물었다.
  “여기는 대중이 얼마나 됩니까?”
  “앞도 三三이요 뒤도 三三이니라.”
  대중의 수효를 물었는데 앞도 삼삼이요 뒤도 삼삼이라니, 마치 까치
뒤집혀 날아가는 소리다. 무슨 소리인지…….
  날이 저물어 지니 무착이 하룻밤 자고 가기를 請하자 노인이 말했다.
  “染着이 있으면 잘 수 없다.”
  즉 마음에 번민과 집착이 있는 사람은 여기 쉬어 갈 수가 없다는 말이다.
  조금 있다가 노인이 또 묻는데 묻는 방법이 묘하다.
  “자네 계행을 지키는가?”
  “예, 어릴 때부터 지키는 데 지금까지 지켜서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염착이 아니고 무엇인가?”
  자칫 잘못하면 계행을 지키지 말라는 소리로 오해할 우려가 있는데,
계행을 지키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닦아도 닦음이 없고 행해도 행함이
없고 가져도 가짐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야 되는데 아직까지 꼭 거머쥐
고 있으니까 집착이란 말이다.
  줄타기를 하는 광대가 줄을 타는데, 지팡이를 짚고 줄을 낮게 매고
왔다 갔다  하는 데, 지팡이를 놓고 줄을 타야 조화가 생기지, 그렇지
않으면 조화가 생기지 않는다.
  그 노인이 무착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한 가지 한 가지 묻는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가질 것이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 하니, 아직까지
가져도 가짐이 없고 닦아도 닦음이 없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말이 그렇게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노인이 무착더러
  “자네는 염착이 있어서 여기서 못 잔다.”
  하고 시자 균제 동자를 시켜서 내 보낸다.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을 뒤집어 씌우는 데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와서 균제 동자에게 절 이름이 무엇이냐고 하니, 般若寺라
한다. 무착이 생각해 보니, 다른 말은 그만 두고 대중 수효를 물었는데,
앞도 三三이요 뒤도 三三이라고 한 말에 걸려서 동자에게 물었다.
  “동자여, 내가 노인에게 대중 수효를 물었는데 앞도 삼삼이요 뒤도
삼삼이라 하니 그 뜻이 무슨 도리요?”
  동자가 말하기를
  “大德아!”
  “예.”
  “이 수효가 얼마나 되느냐?”
  바로 가르쳐 주건만 깜깜하다.
  대덕이란 말은 尊稱語이다.

  “대덕아!”하고 불러놓고, 대답하니 “이 수효가 얼마나 되는가?”
하니 천 리 만 리나 아득하여 모르겠다.
  하나가 통하면 백천 三昧가 모두 통할텐데, 그것을 모르니, 바로 가르쳐
주어도 안 통한다.  그런 말은 모르겠기에 다시 동자에게 법문을 청하였다.
  “동자여 나를 위하여 법문을 좀 해주시오.”
  동자가 법음을 들려주는데

  얼굴에 화를 안 내면 공양 꺼리요
  입으로 화를 내지 않으면 묘한 향을 토함이요
  마음 가운데 성냄이 없으면 이것이 참 보배요
  물듦과 때가 없으면 곧 항상 참됨이로다.
  面上無嗔供養具
  口裡無嗔吐妙香
  心內無嗔是珍寶
  無垢無染卽眞常

  잠시 후 돌아다보니 절도 사람도 모두 홀연히 사라지고 그저 깊고 푸른
산중이었다.  아하, 그 노인이 바로 문수보살, 자기가 친견하려고 이 깊은
산간을 지극한 신심으로 찾아 헤매던 바로 문수보살이었건만, 지혜의 눈이
열리지 못하여 봐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였으니, 그 곳을 향해서
무수히 절을 하고 한 번 더 친견하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염원을 하였다.

  그 후 공부를 참으로 착실히 하였다.
    어느 때 오대산에서 典座라는 소임을 맡아보고 있으면서 동지 팥죽을
큰 鐺口 솥에 쑤고 있었는데, 풀떡 풀떡하고 끓어오르는 죽 솥에서 萬 문수
가 차례로 죽 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무착이 주걱으로 이리 치고 저리 치
고  막 치면서
  “문수도 자기의 문수요 무착도 내 무착이다!”
  문수보살이 방망이를 맞고 나오며 하는 말이
  “네가 삼대겁을 수행해서 노승의 혐의를 입었구나. 쓴 표주박은 뿌리까지
 쓰고 단 참외는 꼭지까지 사무쳐 달다.”

      爾三大劫修行
        還被老僧嫌疑
        苦瓠連根苦
        甘苽徹蔕甘

첫구는 무착에게 향상일로를 은근히 일러주는 동시에 문수 자신의
轉身活路를 슬쩍 보인 것이고  둘째 구는 무착의 깨친 것이 아직
사무치지 못한 것을 일러준 말이다.

  자, 그러니 무착이 공부가 익기 전과 공부를 이루어서 눈이 밝아졌을
 때와를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공부를 성취하기 전에는, 그저 성현을
한번 친견하려고 원력을 세우고 깊고 깊은 오대산을 방황하다가 친견을
하였는데도 눈이 밝지 못해 알아보지도 못한 채 헤어져서는 한번만 더
친견하게 해 달라고 원력을 세웠는데, 알아 봤던지 알아보지 못했던지,

성현을 한번 친견하면 모든 업장과 수행의 장애가 모두 녹아지고, 성현
의 加被를 입어서 마침내 공부를 성취하고 난 후엔, 문수가 나타나도
문수는 제 문수고 무착도 내 무착이다. 무슨 상관있느냐하고 이리 치고
저리 치니 참으로 대단한 용기이다.

  문수대지사文殊大智師여
  저 법에 자재하고 살활종탈殺活縱奪에 자재하니
  중생계에 밝은 빛이요
  人天의 師長이로다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 곳에
  버들이 푸르고 꽃이 붉도다
  山窮水盡處 
  柳錄又花紅 

  여러 善男善女가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부모 밑에 학생으로 있을 때는
아무 생각과, 걱정이 없었는데, 학교를 마치고 장가가면 좋다고 아버지
흉내 내듯이 장가보내고 처녀는 어머니 흉내 내듯이 무슨 좋은 일이나
있나 싶어서 시집을 간다.

이렇게 해서 가정을 이루어 놓으니 죽을 지경이다. 꼼짝 못하고 오만 걱정,
사람 아니면 물질, 물질 아니면 사람, 이 두 가지에 밤낮없이 걱정이다.

  그래서 내가 늘 말하기를, 어쨌든 이 두 가지에 초월해서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고 멋들어지게 연극을 잘 하고, 늘 쾌활하고 명랑하고 낙관적인
기분으로 살아라고 이른다.